산책길/영화는 내 친구

워낭소리 - Old Partnership

반짝이2 2009. 3. 15. 23:02

사람은 가끔, 마음을 주지만
는 언제나, 전부를 바친다

언제나,
그리고 전부를, 바친다는
영화관 입구, 포스터의 글귀가 마음에 와 박혔다.
쉽지 않은 영화겠구나...

성아트홀이 생기고 이렇게 관람객이 꽉 들어찬 건 처음이었다.

갈 때마다 손님이 적어서 이 영화관이 망하면 어디서 이렇게 좋은 영화들을 보나 걱정했었는데..

어떤 부부는 안동에서 일부러 오셨다고.

화면 크고 의자 안락한 대형영화관들에 비하면,

화면도 작고 의자는 불편했지만

78분동안 울며 웃으며, 옆사람 눈물까지 닦아주고 나니

그동안 쌓였던 마음의 묵은 때가 씻겨 내려간 것 같았다.

세상을 살며
부모자식으로, 형제로, 부부로, 친구로...갖가지 인연으로 만나
길게든 짧게든 함께 길을 걸어가게 되지만
최원균할아버지와 '소'의 인연이야말로
'old partner'라는 이 영화의 영어 제목과 꼭 들어맞는다.

영화는 진달래가 발갛게 피는 봄부터 눈내리는 겨울까지  
죽음을 앞둔 소와 할아버지의 '아름다운 마지막 동행'을
수식없이 조용히 따라간다.
경상도 북부의 투박한 사투리는 친절하게 자막으로 옮기면서. 

어려서 다리를 다쳐 한쪽 다리는 절지만
한평생 오직 땅만 알고 농군으로 살아온 할아버지와
커다란 눈은 충혈되고, 힘줄만 남은 마른 몸에
비틀비틀 걸음걸이마저 위태로운 소는
꾸벅꾸벅 조는 모습마저 닮아 있다.

몸 한 군데도 성할 곳 없을 상 싶은 두 이가
해가 뜨나 비가 오나, 그러나 함께
응석부리거나 주저앉지 않고 묵묵히 일을 할 따름.



울음소리만 들어도
배가 고픈지 등이 가려운지 알아채는,
할머니 잔소리는 한쪽 귀로 흘려도 워낭소리엔 선잠을 깨고
소 죽을라 밭에 농약도 안치고
약 되라고 봄이면 민들레를 골라 먹이는
소 죽으면 "내가 상주질할거다"는 할아버지.

38년을 할아버지의 자가용이자 트랙터였던
봉화장터에서 잠든 할아버지를 태우고 혼자서 집을 찾아왔더라는
젊은 소의 유세에 외양간도 뺏기고 여물도 뺏기지만
절룩이는 다리로 묵묵히 재너머 밭을 갈던 소.

두 이는 마치
삼생의 인연을 함께 한 친구처럼 닮고 또 닮아 있었다.
평생을 한결같은 노동의 나날을 함께 한 두 이야말로
말그대로 '반려'가 아니었을까.

그 흔한 누렁이, 얼룩이 이름도 없이
할아버지에게 그냥 '소'라 불렸던 소.
세상에 하많은 소가 있지만
할아버지에게 소는 오직 하나만을 가리키는 고유명사였나 보다.



가 죽기 전날,
할아버지는 하루도 빠짐없이 타고 다니던 소를 타지 않고
절뚝거리며 소 뒤를 따라간다. 짐을 덜어주시려던게다.

마지막 숨을 앞둔 소에게서
할아버지가 손수 코뚜레와 워낭을 푸는 순간,
관람석 여기저기서 흐느낌이 터졌다. 

"불 때고 살라고 저렇게도 많은 나무짐을 져날라주고" 
끙끙 앓는 소리 한 번 없이 고단한 노동의 삶을
고요히 눈감으며 마감하는 소.

"우리 죽고 난 뒤에나 가지."
할머니의 혼잣말에는 삶의 막바지를 바라보는 두 노인의 처연함이 묻어있다.

농사일이래야 학교 다닐 때 농활 몇 번으로 
남의 밭농사 망치는 데 일조한 것이 모두인 제가 
이 영화의 세 주인공 -할아버지와 할머니, 그리고 소-을 
다 이해하기에는 아무래도 역부족.

그래도
사람 사는 일이 
다 세상을 키우고 가꾸는 농사라 감히 말한다면,
어줍잖게 한 자락이라도 헤아려 보았을까.
 
그 누구도 밥 없이는 하루를 살지 못하는 것이 이치인데,
쌀직불금파동으로 한 때 나라가 시끄러웠던 걸 돌이켜보면,
그 후안무치한 인간들은
제 입에 들어가는 밥이 누구의 노동으로 이루어진 것인지
단 한번이라도 새겨 보았을지.

올 설에도
나날이 비어가는 고향 마을의 빈 들 바라보며
허리가 휘도록 고생하시는 부모님, 할아버지 할머님 모습에
마음 짠해했을 얼굴들도 생각난다.


"고맙다, 고맙다, 참말로 고맙다."

사랑한다 요란한 말도 없고
그래, 너 많이 힘들지, 수고한다 공치사도 없지만
언제나 할일을 함께 하는 묵묵함으로
그렇게 한 세상을 걸어가자고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