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지도/세상밖으로-기사스크랩

이 비극의 정체를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반짝이2 2009. 5. 25. 10:13

하루 밤 사이에 안티명박 카페에 천명이 넘는 사람들이 새로 가입했다 합니다.

노대통령의 공과 과를 논하기 전에, 

그가 한 때 우리 국민들에게

87년이라는 한 시대의 가치와 기대를 상징했던 것을 우리는 기억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흘리는 눈물은 이제 그것마저 다 죽이려드는 MB에 대한 분노입니다. 

슬픔과 분노가 희망으로 단단해져,

수백만개의 촛불로 타오를 6월의 광장을

오늘부터 기다리고 준비하렵니다.

 

이 비극의 정체를 우리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기고]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에 삼가 명복을 빕니다

김민웅 / 성공회대 교수
 
임이여, 저 민초들의 긴 행렬이 보이십니까? 그리고 이를 막아서고 있는 경찰들도 함께 보이시나요? 한쪽은 눈물을 흘리고 있고 다른 한쪽은 두려움을 느끼고 있습니다. 한쪽은 가슴을 부여잡고 통곡하고 있으며, 다른 한쪽은 가슴을 쓸어내리며 전전긍긍하고 있습니다. 당신을 죽이면 세상이 제 것이 될 것이라고 여겼던 자들이, 삶과 죽음의 경계선을 통과한 당신을 이기지 못하고 있습니다. 이후 불어야 마땅하고 또 불 것이 확실한 바람을 잠재우려 급급할 뿐입니다.

모두가 충격에 휩싸여 슬픔을 가눌 길 없어 하고 있습니다. 온몸으로 통곡을 하는 이도 있습니다. 뒤따라 죽지 않을까 염려되는 이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계산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하루 속히 제 정신 차리고 정상적인 현실로 돌아가야 한다고 벌써부터 훈계하려는 자들도 있습니다. 대립과 혼란을 우려한다면서 이 죽음의 의미를 어떻게든 축소시키려는 자들이 있는 겁니다. 이런 상황은 이미 우리에게 갈라서야 할 자들과 함께 해야 할 이들이 누구인지 일깨우고 있습니다.

그리하여 “노무현”이라는 이름 석 자가 천지를 진동시키고 있습니다. 애초에 비보(悲報)를 접한 순간, 어느 누군들 충격을 받지 않았을 것이며 어느 누군들 당신이 왜 죽음을 선택했는지 모르는 이 있겠습니까? 이젠 더 이상 자존심도 남아 있지 않다고 한 전직 대통령 최후의 자존심을 조롱과 모욕으로 일관하면서 짓밟은 자들이 죽음의 벼랑을 마련했고 이만하면 이겼다고 여긴 순간, 모든 것이 역전되었습니다. 민심의 바다가 출렁이고 당신을 겨눈 칼끝이 도리어 칼자루를 잡았던 자들에게 부메랑처럼 돌아가고 있습니다.

포악한 권력이 한 시대의 가치를 전부 말살시키려 해

살아생전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무수히 기대를 걸었던 이들은 실망도 많이 했습니다. 대통령직에 있던 당신과 싸우기도 적지 않게 했습니다. 비난과 비판과 매도가 뒤섞인 채 서로에게 교전상태의 탄환처럼 오간 적도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그 또한 모두 같은 배를 타고 가다가 일어난 일이었을 뿐, 이렇게 흉포한 권력이 백주에 활보하고 있는 시대와는 엄연히 달랐습니다. 이런 시대가 등장하지 않게 하려고 모두 그렇게 진력을 다했건만 결국 이 포악한 권력은 노무현이라는 이름에 담긴 한 시대의 모든 가치를 전부 말살시키려 하다가 당신의 목숨까지 겨냥하고 말았습니다.

그래서 당신의 죽음은 우리 모두의 죽음이 되고 있습니다. 한 사람의 죽음이 아니라 민주주의와 진보를 지향하는 시대 전체에 대한 살해라는 것을 우리는 절감하고 있습니다. 자살이란 방식이 그렇다는 것일 뿐, 그 맥락은 엄연히 타살입니다. 민심은 당신의 자살을 보는 것이 아니라 “타살당한 노무현 전 대통령의 모습”을 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죽음을 가져온 자들에게 분노를 쏟아내고 있습니다. 그 분노는 조만간 역사의 심판으로 번질 기세입니다.

지금 흐르고 있는 민초들의 눈물은 허무한 탄식이 아닙니다. 절망의 강이 아닙니다. 끝 간 데 모르는 슬픔이 도달한 고독한 섬이 아닙니다. 그건 도리어 새로운 시대에 대한 갈망이 담긴 결의가 되고 있고 역사를 거꾸로 돌리려는 자들에 대한 투지가 되고 있으며 어떤 권력도 끌 수 없는 가슴의 촛불이 되고 있습니다. 짧은 유서에 모두 담아내지 못한 당신의 목소리를 온통 듣고 있는 민초들의 견고한 힘이 되고 있는 겁니다. 이건 당신이 이 세상에 남기신 가장 소중한 유산이 되었습니다. 죽음이 죽음으로 끝나지 않고 새로운 생명을 얻는 일은 이렇게 우리의 예상을 뛰어넘는 역사의 비밀입니다. 당신의 죽음을 우리 모두가 나누어지고 있고, 당신의 유산도 우리 모두의 가슴에 살아 숨 쉬고 있습니다.

차마 못다 한 말도 우리는 듣고 있습니다. 심중 깊숙이 묻어둔 이야기도 우리는 알아차리고 있습니다. 아무도 모르게 혼자 끌어안고 가고자 한 것이 무엇인지도 우리는 모르지 않습니다. 그래서 눈물이 흐르고, 그래서 안타까워하며 그래서 비통해하면서도 새삼 결의를 다지는 겁니다. 이 비극의 정체가 무엇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개인적 책임의 영역이 있음을 부인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그걸 넘어 포악한 권력과 그 권력에 짝하는 자들의 존재가 이 모든 사태의 중심에 있는 것을 우리는 똑똑히 목격하고 있기에 비극의 정체는 우리에게 이루어야 할 목표를 일깨우고 있는 것입니다.

추모의 마음 부여잡고 6월 광장에 나서는 이들 늘어날 것

헛된 죽음이 되지 않게 하고 싶습니다. 민초들 모두가 그런 마음일 겁니다. 추모의 행렬 깊은 곳에 숨길 수없이 드러나고 있는 이 시대의 육성이 있습니다. 때로 미워했지만 그래도 사랑을 더 많이 했던 노무현 대통령에 대한 민심의 진실이 가리키는 바가 있습니다. 희망과 생명을 짓밟는 권력과 세력에 대해 더는 침묵하고 당하며 살지 말라고 하는 집단적 각성의 불꽃이 바로 그것입니다. 촛불은 그렇게 해서 회생할 겁니다. 역사는 모순에 차 있는 듯하지만, 기묘한 섭리가 있어서 이미 죽은 것처럼 여겼지만 생환해야 할 것은 반드시 생환하게 합니다.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김민웅 성공회대 교수ⓒ 민중의소리

이 슬픔 마침내 딛고 일어서렵니다. 그걸 당신도 원하시는 것 아닙니까? 생전에 못다 이룬 꿈, 그 희망과 목표가 다시 이 시대의 의지가 되어갈 겁니다. 서러운 5월이 지나고 이제 6월이 곧 옵니다. 추모의 마음을 가슴에 깊이 부여잡고 6월의 광장에 나서려는 이들이 늘어날 겁니다. 역사는 격동할 것이며, 민주주의는 새로운 기력을 차리고 이 흉포한 시대를 마무리하는 제의를 펼쳐낼 겁니다. 당신을 그토록 괴롭히고 죽음으로 몰아넣은 힘들이 무릎을 꿇는 그 날이 오고야 말 것입니다.

그러니 슬퍼하지 마시고 부디 저 세상에서 편히 지내시기를 빕니다. 살아생전 못다 나눈 마음, 이렇게나마 진심으로 드립니다. 삼가 명복을 빌며 이 시대의 눈물이 귀한 위로가 되기를 기원합니다. 유가족들 모두에게도 깊은 위로의 뜻을 전합니다. 역사는 노무현 전 대통령을 귀중한 존재로 기억해낼 것입니다. 영전에 국화 한 송이 바치며, 옷깃을 여미고 고개 숙입니다. 부디, 평안히 가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