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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디어법 이후-세개의 '발견' 하나의 '관건'

반짝이2 2009. 7. 23. 11:54

‘올 오어 나싱 게임’은 없다. 강원랜드 카지노엔 있지만 여의도 정치판에는 없다. 그런 단순무식한 게임은 정치판에선 성립되지 않는다.

미디어법만 해도 그렇다. 8개월간의 기나긴 갈등과정을 통해 드러낼 건 모두 드러냈다. 갈등의 당사자들에게 이익을 안기는 대가로 ‘옷벗기’를 요구했고, 앞길을 열어주는 대가로 뒷문을 잠갔다.

 

하나 둘이 아니다. 이명박 대통령의 이른바 ‘중도통합노선’의 실체를 드러냈고, 김형오 국회의장의 ‘고뇌’ 뒤에 숨겨진 진면목을 드러냈다. 하지만 이런 사례들은 여기서 논할 필요가 없다. 익히 알고 있거나, 극히 사소한 것들이다. 새로 발견된 사례, 결코 놓칠 수 없는 사례들은 따로 있다.

 

▲사진=여야 의원들이 국회 본회의장에서 미디어법 처리를 놓고 몸싸움을 벌이고 있다. ⓒ민주당 홈페이지
 

■ 박근혜의 정체

분명해졌다. 박근혜 전 한나라당 대표의 위상은 당수가 아니라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여당 속의 야당’ 당수가 아니라 한나라당에 충심을 다 바치는 당원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여당 속의 야당’ 당수 역할을 하는 건 여권 내 지분싸움에 국한된다는 사실이 확연해졌다.

 

그는 주목받았다. 한나라당의 미디어법 강행 처리에 제동을 거는 모습을 보이자 지분싸움을 넘어 정책싸움까지 벌이는 것인지, 그래서 이명박 대통령과 본격적으로 차별화에 나서는 것인지, 세인의 눈길을 사로잡았다. 하지만 아니었다.

 

한나라당이 난장판 본회의장에서 미디어법을 일방 처리하는 모습을 TV로 지켜보던 그가 말했다. “이 정도면 국민도 공감해줄 것”이라고 말했다. ‘여야 합의’ 대신 여야 난투극이 벌어지는데도, 고등수학은 차치하고 산수만 익혀도 한나라당의 여론독과점 규제제도가 숫자놀음에 불과하다는 사실을 뻔히 알 수 있는데도 그는 눈을 감았고, 그 계파 의원들은 찬성 버튼을 눌렀다.

 

더불어 분명해졌다. 박근혜 전 대표의 입지가 세간의 평가만큼 탄탄하지 않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가 아무리 ‘여당 속의 야당’의 길을 걸으려 해도 힘의 논리를 뛰어넘을 수 없다는 사실이 확실해졌다. 그의 힘은 계파의 결속을 우려하고 보수 지지층의 비난을 의식해야 할 정도로 제한적이라는 사실이 선명해졌다.

 

계파 의원들이 흔들렸다. 미디어법에 대해 이명박계와 전혀 차이가 없는, 아니 오히려 강경한 모습을 보이면서 박근혜 전 대표의 보폭을 제한해버렸다. 보수 지지층이 반발했다. 이유가 어떻든 결과적으로 미디어법을 흔들고 야당에 힘을 실어주는 그의 행보를 비난함으로써 박근혜 전 대표가 ‘산토끼’ 사냥을 멈추고 ‘집토끼’ 건사에 매진할 수밖에 없도록 만들었다.

 

 

■ 조중동의 실체

각인됐다. 조중동의 위상이 언론기관으로 한정되지 않는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그들은 언론기관을 넘어 권력기관화 돼 있다는 사실이 각인됐다. 그들은 정당은 물론 청와대까지 압도하는 막강 권력기관이라는 사실이 확인됐다.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한나라당이 미디어법의 최대 명분으로 내걸었던 일자리 창출이 허구라는 사실이 정보통신정책연구원의 통계 조작을 기화로 또렷이 밝혀졌는데도 미디어법에 죽기살기로 매달리는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태도를 달리 이해할 방법이 없었다.

 

달리 이해할 방도가 없었다. 아무리 셈을 해봐도 신방 겸영을 허용하면 혜택을 보는 언론사가 조중동과 한두 개 경제지에 불과하다는 사실이 재삼재사 확인되는데도 한나라당과 청와대가 만사 제쳐두고 미디어법 처리에 매달리는 모습을 이해할 방도가 없었다.

 

달리 이해할 여지가 없었다. 국민의 70%가 미디어법 강행처리에 반대하는데도 일부 극소수 언론사를 위해 악역을 마다하지 않는 한나라당과 청와대의 처사를 이해할 여지가 없었다.

 

의식하고 있다고, 부담을 느끼고 있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권력을 손에 쥔 청와대와 한나라당마저 의식하고 부담스러워 할 정도로 조중동의 위세가 대단하다고 밖에는 볼 수 없었다.

 

더불어 달라졌다. 조중동을 바라보는 국민의 시각이 달라졌다. 더 이상 언론기관으로만 보지 않는다. 권력을 감시하고 견제하는 독립된 기관으로 인식하지 않는다. 사소한 잘못이 있더라도 권력을 견제하고 감시하기 위해 믿고 성원해줘야 하는 ‘파수견’으로 바라보지 않는다.

 

정반대다. 권력집단까지 쉬 움직이는 절대권력으로, ‘선출된 권력’보다 더 위에 있는 ‘선출되지 않은 권력’으로 조중동을 바라본다. 그들이 이미 가장 막강 정치집단이 된 것으로 간주한다. 정치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반드시 넘어야 할 장벽으로 인식한다. 미디어법이 조중동을 정치판으로 끌어들인 것이다.

 

 

■ 민주당의 처지

결정할 것이다. 민주당에 대한 태도를 선택할 것이다. 애정을 듬뿍 담아 끌어안을 것인지, 아니면 가차없이 내칠 것인지를 결정할 것이다. 미디어법 강행처리 ‘이후’에 보여줄 민주당의 태도를 보면서 민주당의 운명을 가릴 것이다.

 

민주당은 뜨거운 감자였다. 버릴 수도 없고, 삼킬 수도 없는 골칫거리였다. 행적을 봐서는 미련을 깨끗이 버리고 싶지만 그 당이 승계한 전통과 그 당이 확보한 제1야당이란 위상을 쉬 포기할 수 없었다. 그래서 욕하면서 기대했고, 기대한 끝에 실망하곤 했다.

 

이제 더 이상의 여지는 없다. 유보적 관망은 상황이 절체절명의 지경에 이르지 않았을 때나 내보일 수 있다. 하지만 이제는 아니다. 민주당 스스로 미디어법 강행처리를 ‘민주주의의 종언’으로 규정한 마당이다.

 

민주당의 싸움을 지켜볼 것이다. 그리고 민주당의 운명을 결정할 것이다. 그들의 싸움이 ‘면피성 쇼’인지 아닌지를 가리면서 그들에게 ‘독박’을 씌울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의원직 총사퇴를 거론하다가 슬그머니 당 대표와 원내대표의 동반 사퇴로 물러앉는 모습에 기회주의가 담겼는지를 경계하면서, 민주당에 조종을 울릴지 말지를 결정할 것이다.

 

 

■ 민주의 운명

판명 날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를 우려하고 ‘민주 회복’을 요구하던 길거리의 목소리가 잦아들지 커질지 판명 날 것이다. 길거리를 휘감는 허탈과 분노의 감정이 정치적 저항의 촉매가 될지 아니면 정치적 허무주의의 단초가 될지 판명 날 것이다.

 

‘민주주의 후퇴’에 대한 우려가 누적됐지만 ‘민주 회복’의 성과는 축적되지 않았다. 이명박 정부의 반성과 양보를 끌어냈다고 생각했지만 이내 정치적 반격과 보복이 등장했다. 길거리에 모였지만 돌아온 건 성과가 아니라 경찰 소환장이었다.

 

미디어법은 이런 악순환의 정점에서 강행 처리됐다. 미디어법은 ‘민주주의 후퇴’ 우려를 ‘민주주의 종언’ 탄식으로 바꿔버렸다.

그래서 중요하다. 미디어법 ‘이후’의 판도에 따라 성취감과 허무주의가 운명을 달리한다. 국민의 정치 참여와 정치 이탈이 좌우된다. 미디어법 ‘이후’의 싸움에 따라 박근혜의 정체와 조중동의 실체와 민주당의 처지 또한 다른 운명을 맞는다. 심판대 위에 오를 수도 있고, 스쳐가는 단상일 수도 있다.

 

미디어토씨에서 퍼왔습니다.http://mediatossi.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