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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논의,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반짝이2 2009. 7. 18. 16:52

[새로운 시선]
'대통령 권력 분산 개헌'이 아닌 '국민주권 확대 개헌'하자
전 국민이 개헌 논의에 적극 참여해야 할 때

2009.07.17김병권/새사연 부원장

 

개헌논의,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문제를 제기하자

7월 17일 제헌절을 전후해서 개헌논의가 활발하다. 1987년 6월 항쟁으로 직선제를 쟁취해 만들어진 87년 헌법을 고치자는 얘기다. 사실 87년 개헌 이후, 멀리는 1990년 3당 합당시 내각제 개헌 이면합의부터 가깝게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임기 말인 2007년 제안한 4년 중임제 개헌(이른바 원 포인트 개헌)에 이르기까지 정치적인 위기 국면마다 2, 3년에 한번 꼴로 정치권에서 개헌논의가 튀어 나오곤 했다.

그럴 때면 우리 국민들은 진지하게 그 내용을 뜯어보기 보다는 '또 무슨 정치적인 술수가 있지 않나'하는 의심부터 하곤 했다. 이는 국민의 탓이 아니다. 정치권에서 개헌 논의를 늘 '정략적'으로 국민들에게 던져왔기 때문이다.

그런데 이번에는 양상이 좀 다르다. 개헌논의가 나름대로 일정한 체계를 갖추면서 상당히 지속적으로 진행되고 있다. 우선 김형오 국회의장이 직접 개헌 논의를 이끌어 오고 있고, 국회의장 직속으로 자문기구인 '헌법연구자문위원회'까지 두어 개헌연구를 해왔다. 자문위원회는 7월 말까지 '헌법 개정안'을 마련해 국회에 제출할 예정이다.

또한 여야를 포괄하여 국회의원 전체 재적인원 2/3 가까이 되는 186명이 지난해 7월에 '미래한국헌법연구회'를 결성하여 개헌 공론화를 시도해왔다. 헌법연구회의 목표는 18대 국회 임기 내 개헌이다. 연구회는 이미 지난 7월 9, 10일 창립 1주년 기념 개헌토론회를 개최했고, 16일 개헌관련 국제학술토론회까지 주관하고 있다.

김형오 국회의장은 개헌 시한까지 구체적으로 제시했다. 개헌이 되려면 18대 국회 전반기에 해야 하기 때문에 "내년(2010년) 6월 지방선거 전에 (개헌을)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KBS '일요 진단', 2009.7.13). 김원기 전 국회의장은 아예 "내년(2010) 1~2월에 개헌안 공고, 5월에 국회 개헌안을 통과시켜 지방선거 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할 수 있도록 해야 한다"며 구체적인 일정까지 제안했다(연합뉴스 2009.7.14). 잘하면 2010년에 우리 국민은 지자체 장과 의원 투표, 교육감 투표에 이어 개헌 국민투표까지 하게 될지 모르겠다.

이상의 상황은 현재의 개헌 논의가 과거처럼 정치 지도자들이 정치위기 국면의 돌파용으로 활용하던 수준을 넘어서 상당한 지속성과 체계성을 갖고 진행되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다. 여전히 국민들은 정치권에서 확대되고 있는 개헌 논의 속에 숨은 '정략적 의도'에 강한 불신을 가지고 있지만 이쯤 되면 앞으로 개헌논의는 국민의 생각과 무관하게 정치권 전체로 확대될 것으로 보인다.

그렇다면 어찌할 것인가. 국민들이 외면해도 개헌논의의 확산이 불가피하다면, 우리 국민도 더 이상 개헌논의를 피할 필요가 없을 것이다. 반대로 정치 엘리트들에게 이익이 되는 개헌이 아니라 국민에게 이익이 되는 개헌을 어떻게 만들어갈지 그 의사를 적극적으로 밝혀야 할 시점에 온 것이다. 피할 수 없다면 정면으로 문제를 풀어가야 한다.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줄인다면 그 권한은 국민에게 이양되어야 한다

그렇다면 정치권은 도대체 어떤 이유로 무슨 개헌을 하자고 하는 것일까. 여러 가지 복잡한 내용을 제거하고 단순화시키면 핵심은 '제왕적 대통령제의 권한을 분산시키자'는 것으로 요약된다. 이번 노무현 전 대통령 서거까지 맞물리면서 퇴임 후 전임 대통령의 불행이 재임 중 과도한 권력 집중에서 유래되었고 5년 단임이라는 제약까지 보태져 증폭되었다는 것이 그 근거다. 그리고 제왕적 대통령 권한을 분산시키는 대안으로 '미국식 4년 중임 대통령제', '프랑스식 이원 집정부제(분권형 대통령제)' 그리고 '독일식 내각제' 등이 제안되고 있다.

법치국가에서 한 나라의 정체성과 핵심 권력구조를 결정하는 헌법의 중요성은 새삼 거론할 필요가 없다. 그런 의미에서 5년 단위로 투표하는 대통령 선거보다 개헌과 개헌을 위한 국민투표가 국민들에게는 더 중요할 수도 있을 것이다. 또한 일반 법률과 달리 헌법은 법리적인 판단 이전에, 사회적이고 역사적인 큰 흐름의 변화에 대한 정치적 판단과 국민의 의지가 선행적으로 중요하다. 개헌에 대한 국민의 판단이 일차적인 중요성을 갖는다는 것이다.

특히 개헌의 주요 논점이 국가 권력구조의 개편을 다루는 것이라면, 거기에는 무엇보다도 민의를 좀 더 정확히 반영하는 권력구조 전환이 이루어지도록 개헌 방향이 서야 한다. 그러나 현재 개헌논의에는 민의를 어떻게 더 잘 반영할 것인가보다는 기존 정치권력집단 사이의 권력 분배에 더 관심이 있어 보인다. 과거에 나온 논의 가운데 '대통령 결선투표제'같은 그 나마의 민의 반영 시스템 등이 전혀 논의 틀에 들어가 있지 않은 것만 보아도 이는 입증된다.

사실 현재 권력구조에서 나오는 여러 문제점들이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을 총리와 나누거나 국회와 나눈다고 해결될까. 그렇지 않다. 총리나 국회가 민의를 더 대변한다고 생각되지 않기 때문이다. 대통령의 권한이 집중되면서 다양한 문제가 발생한다는 사실은 타당할지 모르나 그 권한의 일부를 총리나 국회가 넘겨받는다고 민의가 반영된 권력구조가 되지 않는다는 사실은 과거의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강행 그리고 지금의 국정 난맥상을 보면 명확하다.

이라크 파병이나 한미 FTA를 대통령의 권력으로 추진하고 밀어붙인 것은 맞지만 그렇다고 국회가 이를 막았는가? 거꾸로 동의를 해주었기 때문에 실행될 수 있었다. 최근 1년 동안의 이명박 대통령의 민주주의 후퇴나 신자유주의 정책 강행을 국회가 막았는가? 역시 그렇지 않다. 최근 수년간 민의에 어긋나는 제왕적 권력행사에는 항상 행정부와 입법부가 함께 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을 제한하고 그 권한의 일부를 물려받는다면 그것은 총리나 국회, 사법부 등이 아니다. 대통령의 제왕적 권한 자체도 원래 국민이 준 것이라면 그 권한 중 일부를 주권자인 국민이 회수하면 되는 것이다.

즉, 대통령의 권한에 제약을 가해야 한다면 '국민이 직접' 권한 제약을 가해야 한다는 것이다. 국민 투표권의 대폭적인 확대, 대통령과 국회의원에 대한 국민 소환권의 보장, 국회 입법에 대한 국민 발안권의 허용과 같은 방법을 통해 국민이 직접 대통령의 권한에 제약을 가할 수 있는 기제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 헌법에 의해 국민의 주권행사 범위와 폭을 대폭 확대하여 대통령 권한도, 국회의원 권한도 제약해야 한다는 것이다.

사실 지난 수년간 계속된 한미 FTA반대 운동도, 2008년 두 달 넘게 서울거리를 덮었던 촛불 항쟁도, 2009년 500만이 참여했던 노 전 대통령 서거 추모행렬도 모두 헌법적 틀 내에서 국민이 자신의 주권을 행사하지 못하면서 발생된 거리의 의사표시였다. 그러나 국민의 의사는 아무런 법적인 강제력을 갖지 못했기 때문에 결국 이명박 정부와 국회는 이를 무시한 채 국민의 뜻에 반하는 정국운영을 계속할 수 있는 것이 아니겠는가.

따라서 새사연은 권력구조 개편을 위한 개헌이 필요하다면, 특히 '대통령의 권력을 분산하는 개헌'이 필요하다면 그것은 '국민 주권을 확대하는 개헌'이 되어야 한다고 제안한다. 그것이야 말로 "대한민국의 주권은 국민에게 있고,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고 하는 헌법 제 1조 2항의 정신을 헌법 안에 더 풍부하게 구현하는 길이 될 것이다.

어떤 시대의 변화를 개헌에 반영할 것인가

김형오 국회의장은 개헌의 당위성을 역설하면서 87년 이후 20여 년간 변화된 시대 상황을 언급했다. 그는 "87년에는 생각하지 못했던 세계적으로 자랑하는 정보화, 90년 이후에 들어선 지방화, 세계화를 수용하지 못하고 있기 때문에 그런 점에서도 (87년 헌법이) 고쳐져야" 한다는 것이다. 맞는 말이다.

그런데 문제는 다른 데 있다.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 역사의 줄기에서 가장 큰 변화를 가져온 것이 무엇이냐는 것이다. 새사연은 헌법에 새로이 반영할 정도의 두 가지 큰 변화를 지목하고자 한다.

첫째는 위기국면에 몰리고 있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의 대전환이라고 하는 역사적 변화다. 1987년 이후 최근까지 우리 경제체제의 근원적인 변화를 지목한다면 그것은 경제의 금융화, 노동 유연화, 기업의 단기 이익화로 표현되는 신자유주의 경제로의 전환이다. 경제의 신자유주의화는 상시적인 고용불안과 양극화 확대, 경제 성장률의 하락, 경기의 불안정성을 구조화하면서 우리 국민에게 엄청난 경제생활의 어려움을 가중시키고 있다.

더구나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로 신자유주의 시스템 자체의 심각한 결함이 노정되고, 위기국면이 좀처럼 해소되지 않고 있는 시점에서 우리 경제의 대전환은 현재 최대의 국민적 화두가 되고 있다.

그런데 확인해 둘 것은 1987년 헌법의 경제 조항은 결코 '신자유주의적'이거나 '시장 지상주의적'이지 않다는 사실이다. 우리 헌법 119조 2항에는 "국가는 균형 있는 국민경제의 성장 및 안정과 적정한 소득의 분배를 유지하고, 시장의 지배와 경제력의 남용을 방지하며, 경제주체간의 조화를 통한 경제의 민주화를 위하여 경제에 관한 규제와 조정을 할 수 있다"고 명시하고 있다.

신자유주의 시장 지상주의와 우리 헌법정신 사이에는 상당한 거리가 있음을 알 수 있다. 사정이 이러했기 때문에 보수 세력은 개헌을 틈타 119조 2항을 아예 없애려는 모색을 해왔던 것으로 알려졌다. 더 큰 문제는 헌법 119조 2항이 엄연히 살아있는 데도 우리 정부는 국민경제의 균형적 발전을 위해 해야 할 역할을 포기해왔다는 사실이다.

헌법을 통해 국민경제의 균형적 성장과 적정한 소득분배, 시장 지배력의 남용을 방지하기 위한 국가의 적극적인 임무와 역할을 더욱 확고부동한 것으로 만들어야 한다. 더 나아가 신자유주의 노동유연화에 의해 특히 심각해진 국민의 노동권을 더 확대해야 한다. 우리 헌법 제 32조는 "모든 국민은 근로의 권리를 가진다. 국가는 사회적ㆍ경제적 방법으로 근로자의 고용의 증진과 적정임금의 보장에 노력하여야 하며, 법률이 정하는 바에 의하여 최저임금제를 시행하여야 한다"고 명시하고 있지만 정부는 국민의 노동권을 '시장'의 논리에 철저히 맡겨 버리지 않았는가.

두 번째는 남북관계의 변화다. 암흑과 같은 반공체제가 완고히 유지되고 있던 1987년과 비교해 엄청난 변화가 일어난 영역이 바로 6.15공동선언과 10.4 선언으로 대표되는 남북관계의 변화다. 87년 개헌 당시에는 전혀 상상조차 할 수 없던 남북 화해와 협력의 상황이 21세기가 접어들면서 극적으로 열린 것이다. 이러한 역사적 변화를 반영한다면 마땅히 이를 헌법에 반영해야 한다.

더구나 이제는 더 이상 되돌릴 수 없는 불가역적인 수준으로 남북관계가 진전되었다고 생각했던 국민들의 믿음이 최근 뿌리에서부터 무너지고 있다. 십 수 년 동안 어렵게 이루어온 남북화해 분위기를 5년 임기의 이명박 정부가 단 1년 만에 원점으로 돌리는 상황이 벌어진 것이다. 이제 더 이상 특정 정부에 의해 남북관계가 역진되지 않도록, 진정 불가역적인 변화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6.15 공동선언의 정신과 원칙을 헌법에 명시할 필요가 있다.

이처럼 '국민주권의 확대개헌'을 중심으로 시장의 실패를 적극 관리하기 위한 개헌, 남북화해를 불가역적으로 정착시키기 위한 개헌을 해야 할 것이다.

정치권의 개헌시도는 국민에게는 힘겨운 싸움이 될 것

그런데 개헌 논의를 보고 있는 국민의 입장에서 가장 난감한 장애물이 놓여있다. 그것은 현재 헌법상으로 우리 국민은 개헌안을 만들 권리도 그것을 발안할 권리도, 논의에 참여할 권리도 없다는 것이다. 오직 대통령이나 국회가 만들어준 개헌안에 '찬성, 반대'할 권리만이 주어졌을 뿐이다.

더구나 개헌의 열쇠를 쥐고 있는 현재의 국회는 여당이 압도적 다수를 차지하는 심히 불균형한 역학구조를 가지고 있는 실정이다. 즉, 현재 국회가 개헌을 책임지는 것에 대해 국민이 신뢰할 수 없다는 뜻이다. 국민이 원하는 개헌안이 나올 턱이 없고 그것을 합법적으로 막을 길도 없다. 어찌할 것인가.

가장 이상적인 방안은 현재 국회와 별도로 개헌안을 작성하고 국민투표에 회부할 역할을 할 수 있는 임시적 '제헌 의회'를 선거를 통해 구성하는 것이겠지만 이 자체도 현재의 국회가 결정을 해야 하니 가능성이 없다. 국민주권을 확대하는 개헌이 국민주권이 확대되어야 가능하다는 역설에 직면한 것이다.

정치권에서 확산되고 있는 개헌논의는 국민이 외면한다고 수그러들 것 같지 않다. 그렇다고 여당이 절대 다수인 국회에서 민의를 반영한 개헌안이 나오기를 기다려 찬, 반 투표를 할 수도 없다. 국민에게 남아있는 유일한 방법은 문자 그대로 일종의 저항권을 동원해 '국민운동'을 전개하는 것뿐이다. 우리 국민의 미래 삶을 규정할 국가적인 중대변화가 개헌을 통해 일어날 조짐을 보이고 있다면 우리 국민에게 달리 선택의 여지는 없는 것 아닐까. 이것이 앞으로 1년 동안 개헌이라는 이름으로 정치권에서 치열하게 권력 밥그릇 쟁투가 벌어질 아수라장에서 우리 국민이 해야 할 일이 될 것이다.

김병권 bkkim21kr@saesayon.or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