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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경계인이로소이다

반짝이2 2009. 3. 23. 13:18
나는 경계인이로소이다
대안교육과 공교육 운동의 연대를 생각하며...
09.03.22 21:06 ㅣ최종 업데이트 09.03.22 21:06 이성한 (twinstarh)

 

  
▲ 아이들 교육문제로 만난 가족들 함께 공동육아 어린이집에 아이들을 보내 키웠던 조합원 가족 몇이 모였다.
ⓒ 이성한
공동육아

 

대안학교에 아이를 보내는 동네 사는 선배 한 분의 솔직담백한 이야기를 글로 읽은 적이 있다. 두 아이의 아빠이자 부모로 대안교육을 선택하게 된 동기와 생각을 진솔하게 고백한 내용이었다.

 

나는 그 이야기를 읽어가며 같이 자식 키우는 부모로서 많은 공감을 하기도 했고, 그분과 그 가족들의 선택이 나름 용감하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자식을 키우고 가르치는 부모의 입장에서 수없이 고뇌하고 성찰하여 얻은 그분과 그 가족들의 생각과 선택에 대해 나는 충분히 이해할 수 있었다.

 

오늘, 무한경쟁을 조장하는 신자유주의 교육, 비인간적으로 승자독식주의를 조장하는 서열화 교육, 부와 기득권의 계급적 지위를 세습하는 교육...이것들이 막무가내로 세상을 판치고 있다. 그 끔찍한 혈투의 교육현장에 우리의 아이들이 눈물 흘리고 있다.

 

그런데 나는 이렇다한 말로 차마 표현할 수도 없는 오늘의 잘못된 교육현실 앞에서 우두커니 서있다. 정권의 입맛에 맞도록 교묘히 계획되어 힘으로 밀어붙여지고 있는 인간성 말살교육을 눈앞에서 실컷 목도하고도 차마 어쩌지 못해 주저하고 있다. 나는 저항의 본능을 잃어버린 유약한 소시민처럼 그저 살고 있다.

 

나는 무척 혼란스럽게 중심을 못 차려 헤매고 있는 내 자신이 스스로 당혹스럽다. 이념과 현실의 이중적 나선구조 속에 매몰되어 주체성 없이 그 속으로 빨려들어 가고 있는 자신을 보고 있는 것 같아 허탈한 자괴감마저 든다.

 

하지만 그래도 나는 소망한다. 우리 아이들이 현재도, 다가올 미래에도 그들의 삶을 소신껏 설계하고, 당당하게 가꾸어 행복하게 살기를 간절히 소망한다. 누군가 이율배반이라 욕하겠지만 그래도 소망한다.

 

우리 아이들이 행복하게 살기를 소망한다

 

나는 평소 대안교육에 대해 많이 생각한다. 그리고 대안교육의 이념과 철학, 그 나아가고 있는 방향과 실천에 대해 많은 부분 동조한다. 그들의 자주적 용기와 선명한 의지를 존경스럽게 바라보기도 하고, 활기차고 돈독한 그들의 생활 공동체적 삶을 부러워하기도 한다. 그렇지만 나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에 대한 내 관점의 안정적 확신이 없어 엄두가 나질 않는다. 이념과 철학에는 동의하지만 현실 사회의 사회적 삶의 구조와 결부하면 무엇인가 어려워진다. 답답해진다. 그들처럼 투철한 용기도 없을뿐더러 내가 가진 사회적․교육적 관점이 미세하게나마 그들과 전적으로 합치되지 않는 부분이 있기에 더욱 그렇다.

 

'그것이 무엇이다'라고 짤막하고 간단하게 설명하기는 어렵다. 왜냐하면 그것은 사회적 변화발전의 과정을 단순하고 명료하게 단답형으로 설명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렇더라도 내가 가진 생각을 굳이 표현한다면 이렇다.

 

숲에는 많은 종류의 이끼, 풀, 나무와, 온갖 종류의 벌래와 새와 심지어 박테리아 같은 세균까지도 모여 산다. 그것들이 숲이라는 하나의 물리적 공간 속에 모여 제 역할을 하고 함께 잘 어우러져 존재한다면 건강한 숲이다. 숲에 사는 생물 혹은 무생물들은 각자 하나의 개별적 존재로서 독립적으로 생존하고 있는 것이 아니다. 각각의 자리에서, 각각의 역할(생산자, 소비자, 분해자)을 하며, 각각의 처지와 몫에 맞는 가치를 조화롭게 발휘하며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러한 숲은 오래도록 근원적 생명의 터전으로 의미 있게 존재할 수 있게 된다. 

 

지금 공교육의 현장은 누가 보더라도 아이들을 지나치게 혹사시키는 광분의 도가니라고 말 할 수 있다. 그런데 그 도가니 속에 대한민국 국민의 약 98%(?) 이상의 부모들이 자식들을 맡기고 있으니 어처구니없게도 이건 매우 아이러니하고 불행한 현실이다. 그러한 열악한 현장에서 많은 아이들은 자신의 개성과 소질의 계발을 이루어내기 어렵고, 창의적인 상상력을 펼치기 힘들며, 풍부한 감성적 소양을 자유롭게 쌓을 수 없을 가능성이 많은 것이 솔직한 현실이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열악한 공교육의 현장에서 우리 사회의 정의와 가치를 생각하며 실천하는 운동가도 나오고, 민주주의와 인권을 수호하려는 다수의 열혈 시민도 배출되며, 우리 사회의 발전적 진보와 변화를 선도하는 지도자도 탄생하는 것 또한 현실임에 틀림없다. 결론적으로 오늘의 열악한 공교육 현장의 현실이 끔찍한 것은 분명하나,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그 현장을 떠나거나 혹은 피하거나 해서는 그러한 문제가 해결될 성질의 것이 아니라는데 내가 가진 문제의식의 본질이 있다.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한다. 대안교육 운동은 그 나름의 지향과 실천으로, 공교육 정상화 운동은 또 그 나름의 지향과 실천으로 나아가야 함이 옳다고 본다. 거기에 필수적으로 대안교육 운동과 공교육 정상화 운동이 상호유기적인 관계로 연대와 보완을 실현할 때, 비로소 조화로운 협동을 통한 우리 사회의 바람직한 변화발전이 이루어 질 것이라고 생각한다.

 

따라서 우리 부모세대들이 해야 할 일은 오늘의 황폐한 교육현장을 건강한 잡초와 고목과 이끼와 풀이 어우러져 사는 아름다운 숲처럼 탈바꿈 시킬 수 있도록 다양한 묘목을 곳곳에 심고 가꾸는 것이 아닐까'라고 생각한다.

 

공교육과 대안교육 함께 걸음으로 나아가야

 

아이들을 둘이나 대안학교에 보내고 있는 선배는 이렇게 고민을 토로하기도 했다.

 

"이런 생각이 들기도 했습니다. 1) 아이들에겐 일말의 선택권도 없이 부모가 일방적으로 그들의 삶의 방향을 정해주는 것은 아닐까? 2) 또 내 아이들에게 이 사회에서 무조건 마이너의 삶을 살라고 부모들이 강요하고 있지는 않은가? 3) 한창 부모와 가족의 사랑을 받고 정을 나누어야 할 아직 어린 청소년 아이들이 부모와 떨어져(기숙사) 장시간을 보내는 것이 과연 바람직한가? 4) 부모의 학력, 경제력이 낮은 형편이 어려운 집에서는 접근하기 힘든 구조가 아닐까? 라는 회의 말입니다."

 

그리고 그 선배는 또 연이어 이렇게 말했다.

 

"그렇지만 나와 우리 가족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안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그러한 회의를 훌쩍 뛰어넘을 수 있는 그 안의 건강성과 사랑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율과 자치를 통해 서로와 서로를 연결하는 연대적 삶을 꿈꿀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자기 삶을 스스로 꾸려갈 힘을 기를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나는 선배의 글을 읽으며 진심으로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리고 곧바로 내 아이들에게 지금 다니고 있는 학교를 당장 때려치우게 하고 싶은 생각이 들기도 했다. '가까운 대안학교를 수소문해 입학시켜볼까' 하는 참으로 우발적인 무모한 생각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렇게 머릿속에서 맴도는 생각을 하다가도 순간적으로 멈칫하게 하는 장애물 같은 생각이 내 정수리 속을 가로막고 있음을 씁쓸하게 느꼈다.

 

'힘없는 정의는 무기력하다'는 파스칼의 경구였다. 그러니까 사회를 정의롭고 올바르게 변화 발전시켜 나가려면 무엇이 필요한가? 어떻게 하는 것이 최선인가? 에 대한 물음과 답, 즉 그에 대한 답은 동력, 다수 대중의 일반성과 보편성을 포괄할 수 있는 유연하면서도 튼튼한 힘이 필요한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요즘 세상은 돈이든, 권력이든 힘을 가진 기득권자들이 득세하고 있는 판이다. 어쩌면 불행하게도 대중들은 그들에게 속고, 이용당하며, 그들이 만들어 놓은 로또 같은 허황된 꿈에 희망을 품고 피지배자로서의 수동적 순응에 익숙해져 관성적으로 살고 있는 듯하다. 실은 서민대중들에게 아무런 콩고물도 떨어지지 않을 열악한 삶이 앞으로도 지속가능할 텐데 말이다.

 

나는 대중 속에서 동력이 만들어져야 하고, 역량이 키워져야 하며, 기득권 세력을 극복할 다양하고 유연한 '사회 민주적 시민파워'가 형성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각각의 영역에서, 지역에서, 분야에서 준비되고 만들어진 동력과 힘이 연대의 틀로 단단히 묶여질 때야만 새로운 사회의 가치 평등적 질서와 자유가 실현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나에겐 올 해 중학교에 갓 입학한 쌍둥이 딸이 있다. 나는 그 아이들을 그냥 동네에 있는 보통학교(공립)에 보냈다.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보통(공립)학교에 보낼 것이다. 공교육의 현장에 내 자식들을 보내 그들이 경험하고 이겨내도록 할 것이다. 다만 내 아이들이 피를 말리는 경쟁과 입시의 수렁에 빠지지 않도록 이 시대 보통 아빠와 엄마로서 두 눈 치켜 뜨고, 정신 똑바로 차려 지키고 보호할 것이다. 그리고 그들이 교육현장의 불합리와 모순을 몸소 경험하여 자기 안의 건전한 비판의식을 싹 틔우고 마침내 그를 통하여 세상을 바꿀 수 있는 힘을 기르도록 지지하고 지원할 것이다.

 

뜻이 맞는 사람과 모둠을 꾸릴 것이고, 건강한 교육단체, 학부모단체, 시민단체와도 끈끈하게 연대하여 힘을 보태고 합칠 것이다. 물론 대안교육 운동을 하는 주체들과도 함께 할 것이다. 하여 현 지배세력이 도모하고자 하는 이른바 '교육적 세습을 통한 반영구적인 지배의 음모'를 규탄하고 분쇄할 것이다.

 

유연한 '사회 민주적 시민파워'가 형성되어야 한다

 

그러고 보니 나는 결론적으로 양다리를 걸친 경계인인 셈이다. 대안교육과 공교육의 경계에 서서 양쪽의 상황을 살펴보며 어떤 선택을 유보하거나, 망설여온 것도 사실이며, 수동적인 태도로  비교적 간편한 선택만을 해오기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앞으로도 나는 계속해서 스스로 경계인을 자임하고 싶다. 일상적 갈등에 고뇌하는 회색의 경계인이 아닌 양쪽관계의 이해를 넓히고, 서로 도움과 정보를 교류하여 나누도록 조화로운 협동을 성사시키는 다리가 되고 싶다. 우리 사회의 심각한 교육의 문제를 풀어나가는 희망의 숲에서 하찮은 쭉정이 씨앗이라도 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