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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등학생들 꿈이 없다

반짝이2 2009. 6. 1. 12:48

초등학생들 꿈이 없다

<시사IN>이 무한경쟁 시대에 내몰린 초등학생 700여 명에게 어떤 꿈을 꾸는지 물었다. 초등학생 자녀가 꾸기를 바라는 꿈이 무엇인지 부모에게 질문했다. 그 결과는 참담했다.
[89호] 2009년 05월 25일 (월) 16:12:19 주진우 기자 ace@sisain.co.kr
   
‘교육은 경쟁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경쟁해야 한다.’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은 명확하다. 영어몰입 교육·일제고사 실시·학교별 순위 공개…. 지난해 4월 교육과학기술부의 ‘학교 자율화’ 조처 발표 이후, 초등학교도 입시교육에 뛰어들었다. 대다수 초등학교에서 방과 후에 ‘우열반’을 나누어 국어·영어·수학을 가르친다.

정부는 국제중학교를 신설하며 중학 입시 부활의 신호탄을 쏘았다. 사교육 시장은 덩달아 요동친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초등학생 10명 중 9명이 사교육을 받는다. 학원 수는 1000개 이상 늘었다. 입시학원과 보습학원의 지난해 매출액은 약 5조원. 1년 전에 비해 20% 이상 늘었다. 교과학습 진단평가(일제고사)를 치르는 초등학교 4~6학년이 되면 밤 10시까지 학원에 다니는 학생이 적지 않다.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교육. 이런 말은 초등학교에서조차 의미를 잃은 지 오래다. 이제 초등학생도 경쟁의 정글에서 지옥의 경주에 나서는 처지다.

<시사IN>이 무한경쟁 시대에 내몰린 초등학생들에게 요즈음 어떤 꿈을 꾸는지 물었다. 현재 바라는 소망은 무엇인지, 꿈을 이루지 못한다면 어떻게 하겠는지? 부모님이 초등학생에게 바라는 꿈은 무엇인지도 물었다. 꿈을 먹고 살아야 할 초등학생이 꿈을 꾸고 있는지, 어른의 욕심이 아이들의 꿈마저 빼앗아버린 건 아닌지 살펴보는 시간을 갖고자 했다.

교사들의 도움을 얻어 서울 숭례초·문래초·화계초·남부초·개일초·개원초, 강원 영랑초·천진초·조양초 4~6학년 700여 명에게 물었다. 조사한 학교 가운데 특징이 명확한 학교와 학년을 중심으로 초등학생의 꿈에 대해 살펴보았다.

“나의 꿈은 돈 많은 주부”

꿈을 꾸지 않는 초등학생이 늘었다. 대답하는 학생 수가 그리 많지는 않지만 꿈이 없다는 학생들의 목소리는 분명했다.

서울 강남구 개포동 개일초등학교 5학년 ○○이는 꿈이 없다. 꿈을 위해 어떤 노력도 하지 않고 있다고 썼다. 부모님은 아무것도 상관하지 않는다고 했다. 강남 개포동 개원초등학교 ○○이(6학년)도 꿈이 없다고 한다. 현재 바라는 소망도 없다고 했다. 서울 남부초등학교 6학년 ○○도 꿈이 없다. 친구 ○○의 꿈은 편하게 사는 것이다. 다만 현재 바라는 소망은 청담어학원 레벨이 업그레이드되는 것이라고 했다. 서울 문래초등학교 5학년 ○○도 딱히 꿈이 없다고 한다. “그저 공부나 열심히 하겠다”라고 했다. 친구 ○○의 꿈은 돈 많은 주부다.

   
서울시 강남구 개원초등학교 6학년 세 학급86명 중에서 꿈이 없다고 답한 학생은 5명. 현재 소망하는 게 아무것도 없다고 대답한 학생도 5명이었다.

설문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꿈과는 동떨어진 이야기를 하는 학생이 많았다. 서울 강남 학생들과 강북 학생들의 꿈 사이에는 차이가 존재한다. 강남 학생은 공부에 관심이 높은 데 반해, 강북 학생은 돈 버는 것과 노는 데 관심이 많았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개일초교 5학년 한 반(26명)의 경우, 서울대 등 명문대에 가는 것이 꿈이라고 대답한 학생이 7명이나 됐다. 강남 개일초 5학년 ○○이의 꿈은 대원중-대원고-SKY 대학에 가는 것이다(SKY가 서울대·고려대·연세대를 의미하는 것을 모르는 초등학생은 거의 없다). 꿈을 이루기 위해 중요한 것은 공부. 구체적으로는 영어와 수학이 가장 중요하다고 한다. ○○이의 현재 소망은 성취도 평가에서 전 과목 100점을 맞는 것이다. 강남 개원초교 6학년 학생 가운데 열에 한 명꼴로 국제중·특목고 진학을 현재 소원으로 꼽았다. 국제중·특목고는 최근 초등학생의 꿈으로 등장하기 시작했다.

   
서울 성북구 숭례초등학교 6학년 60명 가운데 꿈이 재벌 혹은 부자가 되는 것이라고 꼽은 학생이 8명이었다. 현재 소망이 ‘돈이 많았으면 좋겠다’라고 대답한 학생도 7명이나 됐다. 숭례초등학교 한 교사는 “가정 형편이 어려워 부모의 관심을 받지 못하거나 공부 못하는 학생일수록 꿈이 없거나 부자가 되고 싶다고 하는 경향이 있다. 학교 현실이 아이들에게 다양한 가능성을 열어주지 못해 아쉽다”라고 말했다.

최근 회사원, 공무원, 안정된 직장인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답하는 학생이 크게 늘고 있다고 한다. 방대곤 서울 난우초등학교 교사는 “초등학생의 꿈은 사회 분위기를 따라가는 경향이 있다. 현재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부모의 생활이 아이의 꿈에 그대로 투영되었다고 본다”라고 말했다.

강남은 의사, 강북은 선생님이 꿈


선호하는 직업에서도 강남과 강북 어린이가 꾸는 꿈은 차이가 있다. 강남 초등학생은 전문직 종사자가 되겠다는 응답이 많았다. 특히 의사가 꿈이라고 대답하는 학생의 비율이 다른 지역에 비해 월등히 높았다.

이에 반해 강북 학생은 선생님이 되는 것이 꿈이라고 답한 경우가 가장 많았다. 서울 강남 이외 지역에서는 선생님이 꿈이라고 답한 학생이 의사라고 대답한 학생 비율보다 높았다. 지방도 사정은 비슷하다. 2009년 2월 강원 영랑초등학교 졸업생 33명을 조사한 결과 선생님이 되겠다는 학생은 5명, 의사가 되겠다는 학생은 1명이었다. 학부모 11명이 자녀가 선생님이 되길 바랐고 학부모 2명이 자녀가 의사가 되길 원했다.

   
ⓒ문화체육관광부 제공
5월5일 어린이 날에 이명박 대통령(왼쪽)이 청와대 녹지원으로 어린이들을 초청했다.
이는 부모가 바라는 직업이 아이들의 꿈에 그대로 영향을 미친 것으로 풀이된다. 강남 부모의 경우 아이가 의사가 되었으면 하는 경우가 압도적으로 많다. 서울의 대표 부촌으로 강남구 도곡동 타워팰리스 거주민이 다니는 개일초등학교 5학년 학부모 26명 가운데 10명이 자녀가 의사가 되기를 바란다고 답했다. 강남구 개포동 개원초 6학년 학부모 86명 가운데 19명이 자녀가 의사가 되길 원한다고 했다. 

강북의 경우 선생님이 되기를 바라는 부모가 많다. 서울 성북구 숭례초등학교 학부모 가운데 아이가 선생님이 되었으면 하는 부모(10명)가 의사가 되길 바라는 부모(8명)보다 많았다. 그 다음으로는 판사·변호사를 원하는 부모가 많았다.

강남 학생이 강북 학생보다 현실적인 까닭

보통 부모 소득 수준이 높은 학교일수록 자녀가 의사가 되겠다고 답하는 비중이 컸다. 사립초등학교인 서울 숭의초등학교 6학년 담임 교사는 “반에서 열 명가량이 의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다른 반도 사정은 거의 비슷하다”라고 말했다. 삼성 이건희 회장 손자와 탤런트 차인표·신애라 부부의 아들이 다니는 사립 영훈초등학교. 6학년 3반(2001년) 34명 가운데 의사·치과의사가 되겠다는 학생은 9명이었다. 그 뒤로는 과학자 4명, 디자이너 3명, 축구선수 3명, 연예인 3명, 판사 2명, 아나운서 2명 순이었다. 2001년 5학년 4반 31명 가운데 의사나 한의사가 되겠다고 대답한 학생은 8명이었다.

서울 강남구 개일초등학교 박형준 교사는 “강북이냐 강남이냐에 따라 학생들의 직업 선호도가 확연히 구분된다. 강북 지역에 비해 강남 지역 학생은 매우 현실적이어서 의사 등 높은 소득이 보장된 전문직이 꿈이라고 말한다”라고 말했다. 박 교사는 “요즈음 학생들은 훌륭한 사람이 되겠다고 이야기하지 않는다. 무엇 때문에 누구를 위해서 의사가 되겠다고 말하는 학생은 거의 없다. 그저 돈 많이 벌고 편한 직업을 찾는 것일 뿐이다”라고 덧붙였다.

독일의 대문호 헤르만 헤세는 “어린아이에게서 배워라. 그들에게는 꿈이 있다”라고 말했다. 만일 헤르만 헤세가 우리 초등학생을 만난다면 당황할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