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세상의 모든 음악

노동하는 기타, 천일의 노래

반짝이2 2009. 3. 18. 22:08

 "내게는 가난한 사람들의 고민과 희망을

아주 강렬하게 느끼게 해주는 출신 배경이 있습니다.
 나는 그들을 도와주어야만 합니다.

그리고 그들을 위해 투쟁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그 스스로 자립할 수 있게 해주고

더 나은 세상을 보게 해줘야 한다는게 나의 희망입니다." 

 

빅토르 하라 ( Victor Jara, 1935-1973, 칠레 )

 

 

                                                                                      

그를 처음 만났던 건

아마도 80년대를 마감하던 89년의 마지막날 밤이었지싶다.

KBS였던가 MBC였던가 기억은 나지 않지만.

 

"산티아고에 비는 내린다"

 

칠레 3부작 중 하나라던 영화의 제목은

인류역사상 최초로 선거혁명으로 집권한 아옌데정권을 무너뜨린

군사쿠데타의 작전명이었단다.

 

탱크를 밀고 들어오는 쿠데타군에 맞서

대통령 아옌데가

총을 들고 죽을 때까지 싸우던 마지막 장면.

 

군부독재 아래서 청춘을 보냈던 우리는 모두 80년 '광주의 자식들'이었고

'화려한 휴가'라는 광주진압작전 못지않게

고문과 학살로 점철된

지구 반대편 나라 얘기가 남의 일 같지가 않았다.

그래서인가, 영화를 보면서 많이 울었던 것 같다.

 

사들의 총구가 삼엄하게 주변을 경계하는 에스타디오 체육관.

사람들은 모두 겁에 질려 머리를 숙이고 있는데,  덥수룩한 장발의 한 남자가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벤세레모스, 벤세레모스(단결하라! 단결하라!)”

노래 소리는 점점 커가고, 사람들은 고개를 들어 노래를 따라 부르기 시작한다.

당황한 군인들은 남자를 끌고 나가고

개머리판으로 얻어맞은 남자의 머리에선 피가 흐르기 시작한다..

그가 빅토르 하라였다.

실제로 그는 총구 앞에서도 굴하지 않고 노래를 불렀다고 한다.

 

 

 

 

노체트의 쿠데타가 벌어진 일주일 동안, 약 3만여 명의 칠레 시민이 학살당했다.

집권 기간 동안 사망자 3천여 명, 실종 1천여 명, 고문 불구자 10만 명, 국외추방자만 100만여 명.

 

누에바 칸시온(라틴아메리카의 노래운동, 새로운 노래라는 뜻)에 참여했던 대부분의 음악인들도 학살당하거나 추방당했다.

 " 나의 기타는 나의 총, 나의 노래은 나의 탄환"

이라 노래했던 Hara 역시, 싸늘한 주검이 되어 사랑하는 여인 조안에게 돌아왔다.

다시는 기타를 연주할 수 없도록 손가락이 뭉개지고 손목이 부러진 채. 

 

피노체트의 뒤에는 헨리 키신저(노벨평화상을 받았다!)와 미CIA가 있었고

세계최고의 경찰국가답게 그들은 이 무수한 죽음에 대해 아무런 조치도 취하지 않았다.

 

쿠데타군의 헬기가 대통령궁 위를 저공비행하고

아옌데는 칠레국민을 향해 마지막 연설을 한다.

그가 죽을 때까지 쥐고 있었던 기관총은

쿠바의 피델 카스트로가 선물한 것이었다. 

 

 

칠레 만세!

민중 만세!

노동자 만세!

이것이 나의 마지막 말입니다.

나의 희생을 극복해내리라 믿습니다.

머지않아 자유를 사랑하는 사람들이

보다 나은 사회를 향해 위대한 길을 열 것이라고

여러분과 함께 믿습니다.

그들은 힘으로 우리를 우리를 지배하는 것처럼 보이지만

무력이나 범죄행위로는 사회변혁 행위를 멈추게 할 수는 없습니다.

역사는 우리의 것이며, 인민이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언젠가는 자유롭게 걷고 더 나은 사회를 건설할 역사의 큰 길을

인민의 손으로 열게 될 것입니다.

 

 

지금 칠레는 피노체트에게 학살당한 혁명가 아버지의 유지를 이어받은 사회당원 미셀 바첼이 대통령직을 수행하고 있다.

 

피노체트는?

1991년 권좌에서 물러난 그는 런던에서 요양을 하던 중, 영국 사법당국에 체포되었다. 독재 시절 국가 폭력 피해자 중에는 피노체트 군사독재정권을 비판한 스페인 사람들도 있어 스페인 정부가 국제수배령을 내렸기 때문이었다. 2000년 건강을 사유로 석방된 그는 칠레로 귀국당했다. 독재자는 반드시 처벌한다는 신념에 따라 가택연금되어 약 300건의 국가범죄로 기소되었으나, 2006년 심장마비로 갑자기 사망했다.

그가 죽자, 칠레 국민들은 조기를 거는 것도 거부했으며 축제분위기였단다. 시신의 훼손을 우려한 그의 가족들은  시신을 화장하였다.

 

역사란 이런 것이다.

 


 

                                              

선 언

 

Yo no canto por cantar 내가 노래하는 건 노래를 부르기 위해서나

ni por tener buena voz 좋은 목소리를 갖고 있어서가 아니지

canto porque la guitarra 기타도 감정과 이성을 갖고 있기에

tiene sentido y razon, 난 노래 부르네

tiene cor

 

azon de tierra 내 기타는 대지의 심장과

y alas de palomita, 비둘기의 날개를 갖고 있지

es como el agua bendita 마치 성수 聖水와 같아

santigua glorias y penas, 기쁨과 슬픔을 축복하지

aqui se encajo mi canto 여기서 내 노래는 고귀해지네

como dijera Violeta 비올레따가 말한 것처럼

guitarra trabajadora 봄의 향기를 품고

con olor a primavera. 열심히 노동하는, 기타

 

Que no es guitarra de ricos 내 기타는 돈 많은 자들의 기타도 아니고

ni cosa que se parezca 그것과는 하나도 닮지 않았지

mi canto es de los andamios 내 노래는 저 별에 닿는

para alcanzar las estrellas, 발판이 되고 싶어

que el canto tiene sentido 의미를 지닌 노래는

cuando palpita en las venas 고동치는 핏줄 속에 흐르지

del que morira cantando 노래 부르며 죽기로 한 사람의

las verdades verdaderas, 참된 진실들

no las lisonjas fugaces 내 노래에는 덧없는 칭찬이나

ni las famas extranjeras 국제적인 명성이 필요 없어

sino el canto de una alondra 내 노래는 한 마리 종달새의 노래

hasta el fondo de la tierra. 이 땅 저 깊은 곳에서 들려오지

 

Ahi donde llega todo 여기 모든 것이 스러지고

y donde todo comienza 모든 것들이 시작되네

canto que ha sido valiente 용감했던 노래는

siempre sera cancion nueva. 언제나 새로운 노래일 것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