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육,백년지대계/학교는 죽었다

"'교육계의 미디어법'이 몰려온다"

반짝이2 2009. 7. 27. 01:45

"'교육계의 미디어법'이 몰려온다"

[토론회] "'MB형 입시교육' 결정판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

http://www.pressian.com/article/article.asp?article_num=60090726153727

 

교육계에 또 한 번의 소용돌이가 몰아칠 전망이다. '교육계의 미디어법', '교육계의 대운하'라는 별칭이 붙은 이른바 '미래형 교육과정' 때문이다.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부의장 이돈희)는 지난 24일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에 대한 토론회를 서울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개최했다. 이 교육과정은 지난 1월 자문회의 내에 꾸려진 교육과정특별위원회에서 만든 시안이다.

자문회의는 지난 2월부터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을 가지고 서울, 부산, 광주 등지에서 7차례의 토론회를 연 데 이어 마지막으로 이날 '국민대토론회'를 열었다. 자문회의는 앞으로 시도교육감 및 대학총장 간담회 등을 거쳐 8월까지 최종 시안을 마련하겠다고 밝혔다.

이렇게 확정된 시안은 연내에 교육과학기술부 장관 고시를 거쳐 2011년부터 전국 초중고에 새로운 교육과정으로 적용한다는 계획이다. 또한 일부 '준비된 학교'에서는 2010년부터 적용하는 것까지 검토하고 있다.

초중고 교육의 전반을 좌우하는 교육과정 개편은 일반적으로 평균 3~5년의 논의와 10여 년의 준비 기간을 거친다. 현재 자문회의가 이처럼 빠른 속도로 교육과정을 개편하는 것은 유례가 없는 일이다. 또 일선 학교에서는 2007년 2월에 고시된 7차 교육과정이 올해 초등학교 1, 2학년부터 적용되는 등 아직 시작조차 못 해본 상황이다. 심지어 교과서 개발 역시 채 끝나지 않았다.

이처럼 유례없이 밀어붙이는 교육과정 개편에 곧바로 '졸속', 'MB형'이라는 비판이 제기되고 있다. 이날 토론회에는 400여 명의 교수와 교사가 대거 참석해 한목소리로 정부를 성토했다. 토론회의 분위기는 앞으로 교육계에 휘몰아칠 파장을 그대로 보여줬다.

"도덕, 음악, 미술, 실과 등은 '집중이수', 공통교과 수 10→7 축소"

▲ 대통령 직속기구인 국가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부의장 이돈희)는 지난 24일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에 대한 토론회를 서울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에서 개최했다. ⓒ프레시안

우선 교육과학기술자문회의가 그간 토론회와 한 번의 설문조사를 거쳐 마련했다는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은 다음과 같다.

먼저 학년군, 교과군, 집중이수제 등을 도입해 한 학기에 이수하는 과목수를 초등학교는 10개에서 7개로, 중·고등학교는 13개에서 8개 이하로 축소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국민공통인 10개 기본교과 중 도덕과 사회를 사회·도덕으로, 과학과 실과를 과학·실과로, 음악과 미술을 예술로 통합해 7개 교과군으로 줄인다는 계획이다.

주당 수업시수가 1~2시간인 도덕, 음악, 미술, 실과 교과 등은 현행 매 학기, 매 주에 모두 이수하는 방식에서 벗어나, 특정 학기 등에 집중이수할 수 있도록 단위학교에 이수시기 조정권한을 부여했다.

또 현재 초등학교 1학년부터 고등학교 1학년까지 총 10년으로 되어 있는 국민공통기본교육과정을 중학교 3학년까지인 '9년'으로 조정한다는 방안도 마련됐다. 이를 통해 국가의 책임을 초∙중학교 과정까지로 한정하고 학업성취도평가 등을 통해 전 학생의 기초학력보장체제를 구축한다는 방침이다.

한편, 고등학교의 교육과정은 단위학교에게 주어진 자율권을 바탕으로 학교의 건학이념이나 특성에 맞게 교육과정이 자율화, 특성화 될 수 있도록 유도한다는 것이 자문화의의 설명이다. 이는 자율형사립고, 학교 자율화 등 현재 교육 당국이 추진하는 정책과도 맞닿아 있다.

"국영수 이수 강화, 초등 1~2학년 수업시수 확대"

또 고교 교육과정 중 국어, 영어, 수학을 '기초영역'으로, 사회, 과학을 '탐구영역'으로, 체육, 예술을 '예체능영역'으로, 그리고 기술ㆍ가정, 제2외국어, 한문 등 다른 과목은 '선택영역'으로 구분하고, '기초영역'의 이수를 기존보다 강화한다는 방침이다. 이와 함께 자문회의는 "현재의 80개로 세분화되어 있는 선택 교과목을 과감하게 통합하고, 내용상 위계가 가능한 교과는 수준별로 재구성할 것을 제안한다"고 밝혔다.

또한 초ㆍ중ㆍ고 공통사항으로 교과목별 20% 범위에서 시수 및 단위를 자율적으로 줄이거나 늘려 운영하는 것을 허용하고, 특히 고등학교에서는 무학년제 운영, 일반교과목, 전문교과목의 다양한 편성이 가능하도록 제안했다.

자문회의는 초등 1~2학년의 수업시수를 확대해 기초·기본교육, 돌봄기능을 강화한다는 방안도 제시했다. 자문회의는 그 근거로 지난 6월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학부모 80.6%, 교사 69.4%가 찬성했다는 점을 들었다.

자문회의는 이어 "장기적으로 9월 학기제 전환을 통하여 구미 학생들보다 6개월 지체되어 있는 학령을 동일 수준으로 조정 검토한다"며 "또한 고교 단위제를 대학 수준의 학점제로 전환하고, 과락, 유급, 속진을 두어 학생의 능력과 선택에 따라 학생이 선택하도록 하겠다"고 밝혔다.

자문회의는 "정부가 그 동안 학교 현장의 불합리한 규제를 정비하는 등 학교 자율화와 다양화 정책을 추진하여 왔으나, 이러한 행정적 노력만으로는 한계가 있었다"며 "학교 교육의 근간인 교육과정이 경직된 체제 하에서는 학교교육의 자율화ㆍ다양화ㆍ특성화를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이라며 새로운 교육과정을 추진하는 이유를 설명했다.

"미래형 교육과정, 정말 '미래형'인가"

이 같은 '미래형 교육과정 구상안'에 대한 교육계의 크고 작은 우려는 토론회에서 그대로 드러났다. 자문회의가 초청한 패널 역시 예외가 아니었다.

김경자 부산 양천초 교사는 교과별 20% 증감 운영이 가능하게 한 점을 두고 "과연 사교육과 공교육이 공존하고 수능과 같은 고부담 시험에 학교가 종속되는 교육체제에서 어느 학교가 국ㆍ영ㆍ수를 제외한 예체능 등 다른 교과에 대한 필요성을 절감하여 시수를 확대운영 할지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다"고 지적했다.

서울 대방중 이창희 교사 역시 교과군 축소로 한 학기당 수업 과목을 줄이겠다는 방안을 놓고 "줄어든 수업시수는 대부분 국어, 영어, 수학의 과목에서 시수를 늘리게 될 것"이라며 "그렇지 않아도 국어, 영어, 수학 위주로 가고 있는 상황에서 그 속도가 더 빨라질 것"이라고 지적했다.

또 이창희 교사는 "미래형 교육과정이 말 그대로 미래형인가"라고 물은 뒤 "포함된 내용들 중 상당부분은 이미 7차 교육과정이 수정될 때 검토되었지만 적용되지 못했던 것"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고등학교의 경우는 7차 교육과정의 개정안에서 도리어 선택과목군을 늘리는 것으로 되어있는데, 곧바로 과목군을 축소한다는 것이 쉽게 납득할 수 없다"고 덧붙였다.

이화여대 황규호 교수 또한 "획일적인 교육과정을 다양하게 만들고 자율권을 확대하자는 목표는 6차 교육과정부터 해왔던 내용"이라며 "오히려 요즘은 자율권 확대에 대한 비판도 많이 제기되고 있는데, 자율과 선택이라는 방향으로 나가야 할지 많은 검토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황 교수는 "또 교육의 방향성 제시가 미흡하다"며 "글로벌 창의인재를 키우겠다고 하지만 내용이 불분명하고 뭘 하자는건지 잘 드러나지 않는다"라고 지적했다.

"사교육이 도덕, 음악, 미술 때문인가? 차라리 국영수를 선택과목으로 하라"

지정토론이 끝난 뒤 이어진 참가자들의 자유토론에서는 미래형 교육과정을 비판하는 열기가 더 뜨거웠다. 이날 토론회가 열리기 전, 전국교직원노동조합을 비롯해 도덕, 가정, 음악, 미술 등 각 교과 교사모임은 공동기자회견을 열고 "포장은 '미래형 교육과정', 내용은 'MB형 입시경쟁 교육과정'인 교육과정 개편작업을 중단하라"고 요구했다.

또한 한국윤리학회, 전국가정과교사모임, 한국미술교육학회, 한국음악교육학회 등 50여 개관련 학회와 교사 모임으로 구성된 '미래형 교육과정 저지를 위한 공동대책위원회'도 토론회에 앞서 기자회견을 열고 미래형 교육과정을 한목소리로 성토했다. 이들은 미래형 교육과정을 반대하는 각종 구호가 담긴 손피켓을 들고 토론회에 참석했다.

▲ 400여 명의 교사와 교수들은 이날 미래형 교육과정을 반대하는 각종 구호가 담긴 손피켓을 들고 토론회에 참석했다. ⓒ프레시안


성신여대 윤리교육과의 한 교수는 "문제 해결은 정확한 진단에서 비롯되어야 한다"며 "사교육 증가의 문제가 도덕, 음악, 미술과 같은 과목에 의해 부담된 것인지 의문"이라고 지적했다. 그는 "또 왜 사회와 도덕이, 과학과 실과가 과목군으로 묶여야 하나"라고 물은 뒤 "문제가 국영수에 있다면 그 과목이 하나로 묶여야 하지 않나"라고 되물었다.

서울 비봉초 신은희 교사는 "학급 인원을 줄이지 않고 초등학교의 시수를 확대하는 것이 올바른 방향인지 의문"이라며 "또 휴식이나 수면을 위한 시설이 없는데 학교에서 어떻게 돌봄 교육을 늘리겠다고 하는지 모르겠다"고 지적했다. 그는 "지금 서울의 모 초등학교에서는 저녁 9시까지 돌봄이라는 이름으로 아이들을 혹사하고 있다"며 "학생들의 입시 교육 부담을 줄이려고 한다면, 차라리 국영수 총량제를 도입하는 게 방법일 것"이라고 말했다.

서울교대 음악과 노승종 교수는 "선택권이 주어져도 현재 입시 체제에서는 허상"이라며 "현재 제시된 미래형 교육과정을 보면 음악이나 미술을 선택과목으로 하고, 집중이수를 하게 돼 있는데, 예술 교육에 대해 좀 무지하고 무식한 발상을 한 것 같다"고 비판했다. 노승종 교수는 "대체 음악이나 미술을 잘 하는 것이 죄인가"라고 물은 뒤 "백남준과 윤이상을 보라, 누가 국가를 발전시켰나"라고 질타했다.

한국교원대 유민경 교수는 "지금 미래형 교육과정은 5~7차 교육과정 논의 때 수없이 들었던 이야기가 결정판으로 만들어진 것"이라며 "뚜렷한 근거와 데이터도, 현장 감각도 없이 만들어졌다"고 지적했다. 그는 "자문회의는 교육과정 문서만 가지고 갑론을박하지 말고 차라리 대통령을 만나 GDP에서 교육비 비중을 높일 수 있도록 요구하라"고 강조했다.

이처럼 수많은 질의와 비판이 쏟아졌지만 허숙 자문위원은 "우리는 다만 자율권과 선택권을 확대하려는 것"이라며 별다른 답을 하지 않았다. 곽병선 자문위원은 "합의는 이상에 불과하다"며 "오늘 이 자리에서 서로간의 생각이 다르다는 것을 확인했다는 데 의미가 있다고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에 대해 교사와 교수들은 "지금 장난하는 겁니까"라고 항의하며 집단 퇴장했다. 한 참석자는 "어차피 반영되지 않을테니 한풀이나 하라는 거였나"라며 "이대로 교육과정이 바뀐다면 교사들이 정말 가만히 두고 보지 않을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강이현 기자 메일보내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