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시인의 숲

'쉽게 자기를 흔들어 울지 말라, 그러나'

반짝이2 2009. 8. 29. 23:04

'쉽게 자기를 흔들어 울지 말라, 그러나'

 

                                              공광규

 

 

막무가내인 바람과 약한 나무가 많아
세상이 슬픔덩어리인 양 보이지만
헐벗은 겨울나무는 미풍에 울지 않는다

작은 바람 앞에서
쓸데없이 자주 울어버리는 나무들 사이에서
쉽게 자기를 흔들어 울지 말라

바람은 우리를
거친 들판에 몰고 다니며 구기고 찢어
세상 밖으로 내동댕이치려고 애쓰지만

소외의 크기가 같은 옆의 나무와
어깨 서로 기댄다면
구두발길질 따위엔 쓰러지지 않으리

그러나 몹시 사나운 바람 불어
우리의 슬픔이 미풍에도 자주 울어대는
나무들의 슬픔과 같지 않을 때

누가 나를 따라 울 것인가 살피지 않고
슬픔의 크기가 같은 나무들과 어깨동무하고
바람보다 더 큰 힘으로 울어버린다면

못 견디게 그리운 이름 부르는
우리들 함성만 남아
세상 울리리 엎어버리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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