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시인의 숲

사랑을 시작하는 동생에게

반짝이2 2009. 4. 3. 12:30
 

사랑을 시작하는 동생에게

                                                                                  

                                                                                    나해철

 


 사랑이 깊으면

 결코 보이지 않던 풀잎 끝의 이슬이 보이고

 이슬 속으로 너는 걸어들어갈 수 있다.

 여린 어깨로 돌짐을 지고 돌십자가를 지고 십리 외길을 갈 수 있다.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너는 이 세상이 네 사랑만을 위하여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네가 태어난 땅 위의 더불어 사는 사람들과

 강물 같은 역사마저

 이제 네 사랑만을 위하여 흘러왔음을 한순간 깨닫게 된다.

 그리고 송두리째 몸과 마음은 이름모를 전류 가득한 물결에 젖는다.


 사랑은 크고 아름다운 것이기 때문에

 그 가슴은 작고 여리다.

 가장 작은 것이 가장 아름답고 여린 것이 굳세다.

 

 추한 것이 눈물겹게 아름답고

 멀고 먼 타인들과 추상적인 역사와

 꽃밭의 몇송이 꽃같은 우리들의 자유 평화 평등, 통일

 모국어들이 네 곁에 살같이 있게 된다.

 그것으로 숨쉬게 된다.


 첫사랑이 깊고 아플수록

 오래 기다리고 쓰러지고 일어설수록

 세상의 모든 것 중 하나라도 져버리면 사랑은 모조리

 가버릴 수도 있다는 것을 알게 된다.


 모두를 온전히 사랑하지 않으면

 작고 여린 네 첫사랑을 결코 이룰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된다.

 언젠가는 이 세상이 네 첫 사랑의 모든 것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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