날짜를 꼽다 오늘이 4.3임을 알았다.
과거를 잊기에 현재의 우리 역사가 결코 헐겁지 않은 것을....
노랗게 피었을 유채꽃 한무더기, 마음으로 꺾어 바친다.
끝나지 않은 4월. 그 슬픈 아우성

4월 3일, 오늘은 피빛 역사로 기록된 제주4.3민중항쟁이 일어난 지 61주년이 되는 날이다. 아직도 지천에 떠돌며 잠들지 못하는 제주 4.3영령들을 추모하는 마음으로 이글을 쓴다. 숨죽여 왔던 통곡의 역사, 비운의 역사를 또다시 마주하는 심정은 한마디로 침통하다.
들녘마다 샛노랗게 꽃망울을 터트린 유채꽃에도, 마을마다 새하얀 속살을 드러낸 눈부신 벚꽃에도, 눈보라를 맞으며 겨울을 이겨온 동백꽃에도 그날의 아우성은 살아 있다. 칠흑 같은 역사를 노려보며 마을마다 지키고 서있는 앙상한 팽나무에도, 구멍 숭숭 뚫린 돌담에도, 흔적 없이 사라져 버린 집터에도, 한라산 자락 중산간 곶자왈 지대에도, 온 섬에 흩어져 있는 제주오름 기슭에도 그날의 피빛 기억을 거두지 못한다.
하지만 비명에 간 영령들이나 무덤에서 살아나온 사람들에게 지난 역사가 보여준 것은 침묵의 연속이었다. 그럴 때마다 정의는 실종되었고, 진실은 흥정의 대상이었다. 60여 년이 지나도록 4.3은 거짓과 은폐, 왜곡과 날조의 포로가 되어 왔다. 제주도민이 겪었던 절망과 공포, 고통과 분노, 좌절과 체념, 그리고 가슴 속 깊이 응어리진 피해의식은 세월이 바뀌어도 여전하다. 갈등과 대립을 끊임없이 부추겼던 이념의 굴레는 아직도 시퍼렇게 살아있다. 제주 4.3은 그래서 뼈아픈 현재진행형이다.
61년의 세월이 흘렀다. 사람의 나이로 치면 환갑이다. 61년 전 4월, 제주민중들은 3·1정신을 계승하여 외세를 물리치려 했고, 통일국가 건립을 가로막는 5.10 단독선거를 반대하여 조국의 자주와 통일, 민주국가를 세우려 했다. 조국해방의 길목에서 분단조국의 사슬을 끊기 위한 고난의 전투였다. 해방공간에서 '자국에게 유리하고 소련에 반대하는' 친미반공국가를 남한에 세우려는 미국의 지배전략까지는 몰랐다. 공산주의자가 무엇인지, 남로당이 무엇인지도 몰랐다. 하지만 역사를 거역하는 미군정과 친일잔재세력, 민족반역집단의 혹독한 탄압을 눈앞에 두고 가만히 순응할 무지렁이 섬 백성이 아니었다. 제주민중들은 비굴하게 투항하는 대신 저항의 횃불을 들었다. "탄압이면 항쟁이다." (이것이 지난 반세기가 넘도록 제주역사를 이끌어온 '4월 정신'이다.)
그러나 결과는 처참했다. 오름마다 봉화를 올릴 때까지만 하더라도 군경토벌대가 이렇게 자기 동족을 참혹하게 살육하리라고는 아무도 생각하지 못했다. 1948년 4월 3일 무장봉기를 시작으로 1954년 9월 21일까지 벌어진 무력충돌과 토벌 과정에서 3만명이 넘는 제주도민이 무고하게 희생됐다. 한국전쟁에 버금가는 대참극이었다. 희생자의 85% 가량이 육지에서 증파된 군인과 경찰, 서북청년단에 의해 죽임을 당했고, 이들 가운데 대부분이 1948년 11월 중순부터 약 4개월간 전개된 초토화작전 때 목숨을 잃었다. 태워 없애고, 굶겨 없애고, 죽여 없애는 이른바 '삼진작전'으로 한라산 기슭과 오름, 중산간 마을을 온통 붉게 물들인 것도 이 때다.
법을 지켜야 할 국가공권력이 법을 어기면서 비무장 민간인들을 닥치는 대로 대량 학살했다. 아무런 재판 절차도 없었다. 어린이와 여성, 노인에 이르기까지 학살의 범위가 따로 정해진 것도 아니었다. 국제법이 요구하는 문명사회의 원칙이란 것은 그들에게 통하지 않았다. 가해자를 결속시키고 희생자를 공포에 떨게 했던 '빨갱이' 논리만이 절대적인 이데올로기로 군림할 뿐이었다. 제주 4.3학살을 제노사이드 범죄로 단정하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비극은 막을 수 있었다. 한반도에 대한 반공의 방패를 세우며 점령했던 미군과 친일경찰들, 그리고 권력의 단맛에 길들여졌던 정치군인들, 반공청년단체인 서북청년단이 제주섬을 쑥대밭으로 만들지 않았다면. 1947년 3월 1일의 경찰 발포로 인한 민간인 희생 사건에 대해 적반하장 탄압의 칼을 들지 말고 단 한마디의 공식 사과가 있었다면. 1948년 4월 28일, 9연대장 김익렬 중장과 유격대 사령관 김달삼이 어렵게 성사시킨 평화협상 결과를 미군정이 일방적으로 파탄내지 않았다면. 미군과 이승만 정부가 '초토화작전'의 명분으로 삼은 4.3 봉기를 '반란'으로 규정하여 제주도를 '빨갱이섬'으로 내몰지 않았다면. 정말 그랬다면 단란했던 가족이 몰살되고, 평화롭기만 했던 마을이 불에 타 사라지고, 서로가 서로에게 죽창과 총을 겨누면서 섬 전체가 '피의 목욕통'(월리엄 제임스)이 되지는 않았을 것이다.
제주민중을 대량 학살한 책임은 미국과 이승만 친미정권에 있다. 미군정은 1945년 8월 16일부터 1948년 8월 15일까지 3년 동안 38선 이남의 유일한 법적 정부였다. 대한민국 정부가 수립된 이후에는 1948년 8월 24일 체결된 '한미군사안전잠정협정'에 따라 한국군의 작전통제권은 미군이 쥐고 있었다. 그 권한은 1949년 6월 30일까지. 이 기간에 미군은 제주 4.3을 좌·우익의 이분법으로 접근하여 이데올로기의 대결로 몰아갔다. 그들은 국가폭력기구를 앞세운 이승만 정권의 좌익소탕작업을 직접 지휘하기도 했다. 대학살의 광풍이 휩쓸고 갔던 '초토화작전'의 중심에도 그들이 있었다. 미국이 제주양민학살에 대한 직접적인, 그리고 최종적인 책임을 면할 수 없는 이유이다. 미국을 제처두고 제주 4.3의 진실을 가려낼 수 없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지난 세월 제주도민들은 폭력과 죽음의 기억에 맞서 줄기차게 싸워왔다. 그것은 어쩌면 "제주의 독립·자치·자율의 전통과 연대와 공동체성이 외부의 힘에 의해 억눌려 파괴되어 갈 때 제주공동체가 '존립'을 위해 저항했던 것"(박찬식)이었는지도 모른다. 제주도민의 끈질긴 4.3 진실규명 운동의 결과 4.3특별법도 만들어졌다. 2003년 10월 마지막 날에는 노무현 전 대통령이 국가권력에 의해 대규모 희생이 이루어졌음을 인정하고 4.3 유족과 제주도민에게 공식 사과했다. 그렇게 제주 4.3은 어둠의 긴 터널에서 빠져나와 '미완의 역사'를 걷어내는 듯 보였다. 하지만, 제주 4.3은 끝난 것이 아니었다.
시대에 뒤쳐진 이명박 정부가 출범하면서 별러왔던 '빨갱이 망령'이 다시 기승을 부리기 시작했다. 국방장관을 앞세워 제주4.3항쟁의 본질을 외면하고 '좌익세력의 무장폭동'이라 매도하며 역사교과서를 개정하라고 핏대를 올렸다. 대통령직 인수위원회에 이어 한나라당에서는 '4.3위원회'를 폐지하겠다고 틈만 나면 으름장이다. 반북 반통일 냉전수구집단은 4.3특별법과 4.3위원회의 희생자 결정에 불만을 품고 헌법소원까지 제기했다. 진실의 역사를 억누르고 거역의 역사를 새로 쓰려는 이들의 몸부림은 절규에 가깝다. 이를 지휘하는 이명박 정부의 역사인식은 한마디로 '파시즘의 축소판'을 닮아 있다. 정부 스스로 광기의 덫에 갇혀 있다.
영화 <로베레 장군> 가운데 나치에 저항했던 사람들이 감옥에서 처형되기 직전 끌려가는 장면을 잊을 수 없다. 그때 포승줄에 묶인 어느 사람이 옆 사람(저항운동가)과 나눈 대화가 생생하다.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 나는 저항운동을 한 일이 없다. 그런데 왜 내가 죽어야 한단 말인가?" 옆 사람이 그에게 조용히 말했다. "당신이 아무 것도 하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죄다. 국가 존망의 위기에서 나라에 대해 관심조차 없었다는 것, 그것이 바로 당신이 우리와 함께 죽을 수밖에 없는 이유다." 조국을 위해 아무 것도 하지 않은 죄 때문에 우리 모두는 비극의 역사에 포로로 끌려간다는 것. 과거의 아픈 기억과 싸우면서도 한없이 쫓겨 왔던 서러운 제주 4.3의 역사와 겹쳐지면서 가슴을 서늘하게 하는 대목이다.
기억되지 못하는 역사는 다시 반복된다. 다시는 불행한 역사가 되풀이 되지 않도록 마침표를 찍어야 할 책임은 산 자들의 몫이다. 제주 4.3의 진실을 명확히 밝히고, 더 나아가 미국과 이승만 정권의 학살 책임을 명징하게 규명하는 일이야말로 통일시대를 대비하는 우리 역사의 큰 숙제다. 동백꽃으로 질기게 피었다가 통꽃이 되어 스러져간 목숨들, 60년여 세월 동안 구천을 떠도는 4.3영령들의 해원과 영면을 위해서라도 미룰 수 없는 과제다.
제주 오름 들판에 설운 넋으로 누웠다가 봄날 아지랑이로 말없이 피어나길 꼭 61년. 왈칵 눈물이라도 쏟지 않고 4월의 노래, 슬픔의 노래를 차마 부를 수 없다. 억울하게 죽어간 4.3영령들의 영원한 안식과 명복을 빈다. Ø굴렁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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