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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정규직도 아닌 ‘무등록’…월급 20만원 ‘도심속 노예’

반짝이2 2009. 3. 27. 22:27

비정규직도 아닌 ‘무등록’…월급 20만원 ‘도심속 노예’

ㆍ한숨 싣고 달리는 ‘스페어 택시기사’

실업자 400만 시대에 ‘도심 속 막장인생’이라 불리는 수습 택시기사들. 일명 ‘스페어(Spare)’로 불리는 이들은 소속 택시회사에 등록조차 되지 않은 ‘유령’ 같은 존재들이다. ‘비정규 미등록’ 상태의 이들은 기본급은 물론 4대 보험 혜택도 못 받는 법의 사각지대에서 하루하루를 연명하고 있다. 택시회사는 앞다투어 수습기사들을 모집하고 있다. 인천지역엔 운전사의 75%가 수습기사인 택시회사도 있다.

4대보험 혜택 고사하고 기본급 보장도 안해줘…지자체 방관속 더 악화

택시회사가 월급제 도입 이후 도급(택시회사가 매일 일정액을 받고 택시만 빌려주는 것) 대신 수습기사 채용으로 운영방식을 바꾼 결과다. 정부와 지자체는 대책마련은커녕, 단속에도 소극적이다.

지난 23일 인천 계양구 교통연수원. 매주 한 차례씩 치러지는 택시운전자격증명시험을 보려는 사람들로 북새통을 이뤘다. 이곳에서 수습기사로 1년 넘게 택시운전대를 잡고 있는 김상권씨(37·가명)를 만났다. 차 안에서 1000원짜리 김밥 한 줄로 점심을 때운 김씨는 동승한 기자에게 신세한탄부터 늘어놓았다.

“수습기사에게는 4대 보험 혜택도 없습니다. 택시도 대부분 폐차 직전의 낡은 차가 지급됩니다. 그나마 요즘엔 배차를 받을 수 있으면 감지덕지죠.” 2007년 11월 ㅅ택시회사에 수습기사로 취업했다는 그는 “3개월만 지나면 정규직으로 전환될 것으로 기대했는데 지금도 수습신세”라며 쓴 웃음을 지었다.

김씨가 소속된 ㅅ운수의 수습기사는 전체 운전기사 288명 가운데 216명. 75%가 수습기사로 정규직 등록기사는 72명뿐이다. 전국운수산업노조 민주택시본부에 따르면 인천지역 내 61개 택시운송회사에 근무하는 운전자 7987명 가운데 3029명(37.9%)이 김씨와 같은 미등록 운전자다.

택시회사가 수습기사를 선호하는 이유는 고용부담이 없기 때문이다. 정규직인 등록기사에겐 4대 보험은 물론 월 115만4000원(운송수입 230만원 기준)의 급여를 보장해야 하지만 미등록 수습기사에겐 보험은 물론 급여 보장을 할 필요가 없다.

인근 식당에서 만난 ㅇ택시회사 박모씨(40). 7개월째 수습기사로 일하고 있다는 그는 “지난달 회사로부터 월급여로 20만8600원을 받았다”며 수기로 이름·금액만 적힌 흰 편지봉투를 보여줬다. 수습기사에겐 하루 9만원의 사납금을 입금하고 초과로 번 수입금의 10%를 뗀 나머지가 월급여로 지급된다. 그러나 택시운전이 처음인 박씨로선 사납금을 채우기도 버거운 일이다. “하루 12시간씩 쉬지 않고 운전대를 잡아도 빚은 더 늘어간다”는 그는 “열심히 일하면 개인택시라도 받을 수 있겠거니 했는데 수습기간은 경력으로도 치지 않아 그마저도 힘들 것 같다”며 한숨지었다.

수습기사들은 최저임금 등 국민의 기본권리조차 보장받지 못하고 있지만 지자체 등은 미온적인 대처로 일관, 사태를 악화시키고 있다. 운수노조 부산본부는 지역 내 미등록 수습기사를 고용한 것으로 의심되는 ㅅ택시 등 5곳을 고발했으나, ㅅ택시만이 경고처분을 받았다. 운수노조 부산본부 장현술 국장은 “솜방망이 처벌이 계속되면서 지역 내 택시회사에서는 이 같은 고용 형태가 만연돼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말했다.

<인천경향신문 | 지건태기자 us216@kyunghya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