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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진안군 작은 마을의 소중한 실험

반짝이2 2009. 3. 13. 17:13

[3월 12일] 진안군 작은 마을의 소중한 실험 - 백운면 

      2009/03/12 15:21 정윤수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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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이 블로그에 대하여, 이를테면 전북대 강준만 교수라면 마뜩찮아 할 것으로 짐작한다. '지방은 식민지다', 이것이 근래 강준만 교수가 뜨겁게 제창하고 있는 중요한 화두가 되고 있는데, 이 화두는 서울과 지방의 기형적인 정치적, 행정적, 문화적 불구 상태를 가리키는 것이다. 현재 지방의 거의 모든 물산과 인재와 자원은 서울을 떠받치는데 쓰이고 있다. 그런데 그 구조의 본질에 대하여 서울은 무관심하고 지방은 어떻게든 서울로 진입하려는 열망 때문에 애써 모른체 한다.

구름을 이고 있는 전북 진안군 마이산 모습

오늘 이 블로그처럼, 지방의 어느 소읍이나 작은 마을을 '둘러 보는' 정도의 글은 이러한 '식민성'을 더욱 부채질할 수도 있다. 예컨대 '오래된 미래'라고 부를 수 있는, 인도나 티벳이나 라틴의 마을에 대하여 마치 '인류 문명의 시원'이니 '피로에 지친 영혼의 안식처' 하는 말들이 심각한 오리엔탈리즘의 폐악이 될 수 있는 것처럼, 지방에 대한 '애상적인' 이미지는 국내판 오리엔탈리즘이 될 수 있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 산하의 작은 마을과 삶에 대하여 무관심하기 보다는 좀더 겸손한 걸음으로 찬찬히 살펴보는 것은 아예 회피할 만한 일은 아닐 것이다. 철마다 특산물 축제들이 요란스럽고 지차체마다 자연관광을 넘어 문화 관광, 역사 관광, 인물 관광의 테마를 내세우고 있지만, 그것들이 울긋불긋한 화장의 차원을 아직은 넘지 못하고 있는 듯하다. 그래서 조용한 걸음으로 산하의 소읍을 둘러보는 것은, 원치도 않게 지방에 대한 '문화 식민지성' 강화로 작용할 수는 있어도, 아예 처음부터 포기할 일은 아닐 것이다.

진안군 백운마을로 다가가면, 자연스레 창문을 열게 된다.

전북 진안의 작은 마을, 백운면 원촌마을을 생각해 본다. 다가갈수록 기이하면서도 아늑한 이중적인 느낌을 주는 마이산, 그 산의 남쪽으로 15분 쯤 달리는 백운면 원촌 마을에 닿는다.

백운면이라는 이름에서 알 수 있듯이, 이 말은 흰 구름도 쉬어 간다는 소슬하고 한적한 역사를 지닌 이름이다. 마을 위쪽으로 높은 산에서 발원한 데미샘의 물이 이어지는 섬진강 물길이 흐르고 금남정맥과 호남정맥의 산길이 만나며 30번 국도가 지난다. 예로부터 이 일대는 물산이 풍부하여 장터도 크게 열렸으나 조용한 마을이 된 지 오래다. 여름철 휴가 때나 국토종단하는 도보 행렬이 지나갈 때를 빼놓고는 조용한 마을이다.

그런데 만약 당신이 이 작은 마을에 들어선다면, 정말 운전을 조심해야 한다. 지방의 작은 마을이 어디나 그렇듯이 길은 구불구불하고 가변 신호등이 많다. 그것만으로도 주의를 요하지만, 무엇보다 이 마을의 작은 가게들, 그 간판들이 너무나 정갈하고 소박하여, 진실한 뜻의 아름다움을 갖고 있어서, 자칫 한 눈을 팔 수도 있기 때문이다.

진안군 백운면의 소박하고 아름다운 간판들

마을의 간판은, 굳이 비유하자면 '오래된 미래' 같은 느낌을 준다. 서로가 밀치고 제치고 따라붙고 하는, 이 경쟁 사회의 축약도와 같은 도심지의 간판은, 이 마을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저마다 울긋불긋하게 치장하여 그 요란한 화장이 오히려 거북한 역효과만 자아내는 도심지의 삐까번쩍한 간판은 이 말에서 찾아보기 어렵다.

전주대 도시환경미술학과 이영욱 교수가 디자인그룹 ‘산 디자인’과 ‘티팟’ 등의 협력으로 이룬, 작지만 아름다운 성과다. 이 전문가들과 전주대학교, 그리고 백운면 마을조사단이 협력하였고 무엇보다 주민들이 적극적으로 동의하였다. 큰 글씨에 번쩍거리는 조명이 간판의 모든 것인 줄 아는 시대에 작은 크기에 소박한 디자인으로 마무리하는 과정이었다.

물론 동네의 간판이 바뀌었다 해서 그 말의 어려운 사정이 하루 아침에 바뀔 리는 없는 일이다. 하지만 작지만 큰 사건으로 볼 수는 있다. 관이 적극 지원하고 전문가들이 협력하며, 무엇보다 마을 주민들이 지지하고 참여하여 작은 것 하나씩 고쳐나갈 때, 또 무엇보다 주민들의 삶의 내면으로부터 그런 일들이 진행되어 마을과 인근의 부락과 자연들이 어우러질 때, 퇴락하여 무기력해지는 기운을 조금을 덜 수 있는 것이다.

간판의 변화는 작지만 의미 있는 '사건'이다.

2001년부터 진안군청은 ‘마을만들기 팀’을 조직하여 몇 년째 다각도의 실험과 사업을 벌여 왔다. 진안군은 임야 비율 80%의 전형적인 산간고원형 농촌지역. 2004년 행자부의 낙후도 평가에서 전국 234개 자치단체 중 231위를 한 낙후한 마을이다. 1966년 10만 명을 넘었던 인구는 2005년 현재 2만 4000여 명. 이런 정황에서 '마을만들기 팀'이 가동된 것이다.

우선 행정의 시작과 끝을 모조리 관에서 결정하여 상명하달하던 방식을 깨려고 노력하였다. 주민이 마을회의를 통해 마을 발전을 위한 계획을 수립하도록 하였고 이를 단계나 중요도에 따라 우선사업 중심으로 갈래를 잡아 추진하되 그 과정에 주민이 참여하도록 한 것이다. 물론 '개발'이라는 것(어떤 개발이냐 하는) 자체를 다시 문제 삼을 수는 있지만, 어쨌거나 주민의 삶에서 일이 시작되도록 한 것은 의미 있는 일이다.

백운면의 농기구 수리점의 입간판

임수진 전 군수는 농촌지역개발 전문가인 유정규, 구자인 등 인재를 초빙하여 '으뜸마을'을 구상하고 추진했다. 대한민국 최초의 ‘일용잡급직 박사’로 일했던 유정규 박사에 이어 서울대를 졸업하고 일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구자인 박사가 연고도 없는 진안군에 내려와 다양한 ‘활력 사업을 추진했다. 백운면의 소박하면서도 정갈한 간판은 이 과정의 일환이다.

그야말로 주마간산으로, 잠시 살펴본 것에 지나지 않는 백운면 원촌마을 구경이 진안군의 이러한 행정 실험을 평가하거나 적어도 그 실험의 의의를 짐작할 만한 일은 되지 못한다. 행정 실험이란 전시 효과로 금세 드러날 일이 결코 아니고 오랜 시간의 추진과 평가가 필요하다. 더욱이 행정 방식의 개선만이 중요한 게 아니라 그 개선을 통하여 지방을 어떤 삶으로 바꿔나갈 것인가 하는 근본적인 철학도 평가되어야 한다.

백운면의 작은 가게 간판이 정갈하게 바뀌었다.

그래서, 위에 소개한 모습은 그야말로 주마간산일 수밖에 없고 더욱이 '간판'의 변화에만 주목한 것이므로 '지방의 식민지성'이라는 중요한 화두에 어울리지 않는 얘기일 수도 있는데, 그러나 우리 산하, 그 깊은 골과 너른 강의 삶들을 좀더 차분하게 바라보는 작은 거울이 되었으면 싶다. 작은 마을이 살아야 이 산하가 살고 국토가 살고 우리의 허황된 삶도 위로받는다. 국토개발이니 대동맥이니 하면서 오로지 시속 100km 이상의 고속도로와 왕복 4차선의 국도만을 추앙하여 왔으나 이제 그런 속도로는 문제가 해결되기는커녕 더 심각해 질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