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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우리는 핀란드 교육에 흥분 하는가

반짝이2 2009. 3. 13. 14:11
[이영탁의 참교육]
왜 우리는 핀란드 교육에 흥분 하는가

핀란드 교육, 제대로 공부하고 따라갈 일이다

 

 

2008.04.03이영탁/새사연 이사

 

 

핀란드의 교육 현장을 취재한 모 신문기자는 ‘학생들을 위한 나라’, ‘ 교육의 천국’이라고 소감을 밝힌 적이 있다. 인구 500만의 조그만 나라가 어떻게 세계적인 경쟁력을 만들었을까. 방송이나 신문의 보도 내용을 보면 가히 호기심과 유혹을 받을 만하다. 1등을 모르는 아이들, 과외 없는 나라, 시험 없는 평가, 무료 교육, 무료 급식, 무료 교재, 국가예산의 14% 교육 예산...

특히 핀란드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의 2006년 학업성취도 국제학력평가(PISA)에서 과학 1위, 수학 2위, 읽기 2위 등 사실상 교육경쟁력 1위의 나라다. 뿐만 아니라 반부패지수(청렴), 경제 분야,  대학경쟁력, 국가경쟁력 등 모든 부분에서 비교우위를 가지고 있다. 이렇다보니 교육개혁과 교육경쟁력을 논할 때마다 핀란드를 따라가자며 너도나도 처방전을 내놓는다.

영어몰입교육이나 교사평가, 대학경쟁력 등을 주장하는 사람들부터 무상교육을 주장하는 사람까지 모두 핀란드식 교육모델을 배우자고 한다. 방송을 통해 1등도 꼴찌도 만들지 않는 교육현장을 보면서 맘 놓고 울어봤다는 선생님까지 핀란드 교육은 감동 그 자체다.

과연 핀란드 교육이 한국의 교육문제를 해결하는 대안적 모델이 될 수 있을까. 전체를 보지 못하고 부분을 확대하여 한국사회에 이식하려고 하지는 않는지 우려가 앞선다.



이명박 정부의 영어몰입교육과 교원평가

이명박 정부가 총선에서 한반도 대운하와 영어몰입교육 같은 핵심 대선공약을 감추고 있지만 영어몰입교육과 교원평가정책은 이미 다양하게 추진되고 있다. 국가경쟁력을 강조하고 있는 이명박 정부의 교육정책모델에 핀란드의 교육제도도 자주 등장한다. 핀란드 교육의 경쟁력을 영어몰입교육과 우수한 교사의 질로 보기 때문이다. 

핀란드의 영어경쟁력은 세계 최고 수준이다. 토플성적도 최상위에 속하고 국민의 80% 이상이 영어로 의사소통하는 데 불편이 없다고 한다. 교사들은 영어로 수업하고 학생들은 영어로 에세이나 보고서를 쓰는가 하면, 국민들은 국가공영방송에서 하루 종일 영어방송을 청취할 수 있다. 웬만한 드라마, 영화는 자막 없이 영어로만 방송하고, 나머지 방송도 영어로 자막이 제시된다. 세계적인 영어교육전문가인 데이비드 마시 교수는 우리나라에서 열린 어느 심포지엄에서 CLL(내용-언어 통합학습법)을 조언한 바 있다. 수학, 과학, 미술, 체육 사회, 국어 등 다양한 과목을 영어로 가르치는 핀란드식 몰입교육을 강조한 것이다.

그리고 이명박 정부는 이러한 영향을 받은 탓인지 과학과 수학 등 다양한 과목에서의 영어몰입교육, 초등학교 3학년부터 2시간 영어수업, EBS영어방송, 영어전문교사 계약직 고용 등을 정책으로 내세우고 있다.

핀란드 교육의 또 다른 성공비결로 꼽히는 것이 최고 수준의 우수한 교사진이다. 유치원 교사는 최소한 정규대학을 졸업해야 하고, 초중등학교 교사는 석사학위가 있어야 가능하다. 박사 학위를 소지한 교사도 상당수다. 보수 언론이나 일부 전문가들은 능력 없는 교사는 살아남을 수 없는 시스템이 핀란드의 성공비결이라고 해석하며 교사경쟁력 강화를 위한 교원평가를 강행할 태세다. 교사 경력 15년 이후의 교사연봉을 비교해보면 핀란드가 1인당 GDP의 1.29배인데 한국교사의 연봉은 2.2배라며 교사집단을 향한 불신의 칼날을 갈고 있다.


 
심상정 후보의 핀란드식 자율학교, 핀란드형 교육특구

이번에는 진보진영의 ‘핀란드 따라 배우기’에 대해 살펴보기로 하자.고양 덕양갑에 출마한 진보신당의 심상정 후보가 핀란드형 교육특구를 만들겠다는 공약을 발표하면서 학부모들과 사회의 주목을 받고 있다. 다른 지역에 출마한 진보신당 국회의원 후보들도 핀란드식 자율학교, 교육특구 공약을 앞세워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심상정 후보 측은 핀란드가 맞춤형 자율교육을 핵심경쟁력으로 하고 있는 선진 교육국이라며  중등 2개교, 고등 2개교를 선진유럽형 자율학교로 전환하고 단계적으로 확대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선진형 자율학교로 전환되면, △교과편성 자율성을 통해 창의성과 특성을 살리는 맞춤형 자율 교육 실시 △ 우수 교원 초빙과 교과 편성 자율성에 근거한 책임 교육제 실시 △ 북유럽식 토론형 학습, 체험 학습, 개방형 학습 진행 등 기존 교육 시스템을 완전히 혁신한 선진형 교육 모델을 적용하겠다는 것이다.

심 후보가 제시한 맞춤형 자율학교는 한국의 초등, 중등학교를 합친 격인 핀란드의 9년 의무교육기관 ‘종합학교’를 모델로 삼은 듯하다. 핀란드 종합학교의 성공비결은 최고 대우를 받는 최고수준의 교사들에게 주어지는 교육과정운영의 융통성과 자율권, 평가권이다. 특히 수업 시간에 학생들의 능력에 따라 맞춤형 교육을 하고 모든 학교에 특수교사들이 배치되어 학습부진아만을 위한 특별수업도 진행한다. 또한 수업은 반나절만 진행하면서도 방학기간은 3개월이나 될 정도로 가정교육과 자유로운 취미생활을 강조하고 있다. 고등학교의 경우 대부분의 고등학교를 지자체가 운영하며, 학년과 학급 개념이 없는 무학년제로 3~4년 동안 75강좌를 이수하면 한다. ‘학업능력이 탁월한 아이는 집에서 선생님과 이메일을 주고받으며 스스로 공부하기도 한다’는 소툰키 고교 교장의 말처럼 교육과정이 유연하며 공평한 수월성을 추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심상정 후보의 핀란드식 자율학교 모형이 핀란드의 종합학교 또는 고등학교의 모습과 다르게 느껴지는 것은 학교단위의 교육과정 운영의 자율성과 우수한 교장, 교사의 확보, 수업 방법 등의 개선에 그치고 있기 때문이다.

핀란드 학생들의 고른 학업성취능력의 비결은 종합학교에서 이루어지는 개별지도에 있다. 교사들의 자기계발 노력과 학생 개개인의 수준에 맞는 맞춤형 지도가 양질의 무상교육을 만들고 있는 것이다. 고등학교의 경우 학년의 구분 없이 능력대로 배울 수 있도록 함으로써 수월성 교육과 평등교육이 조화를 이루도록 하고 있다.

결국 교육과정에 막대한 영향을 끼치는 교사들의 열정과 전문성, 교육철학이 담보되지 않은 상황에서 단순히 눈에 띄는 몇몇 장점들만을 들여올 경우 또 다른 입시명문고를 만들 가능성이 있는 것이다.


핀란드 교육의 진정한 힘은 어디에서 나오는가

2000년 유럽정상들은 리스본회담에서 2010년까지 3%의 경제성장률과 20만 개의 고용창출을 위한 lisbon agenda로 ‘전 세계에서 가장 역동적이고 경쟁력 있는 지식기반 경제 건설’을 합의하였다. 최근 벨기에 브뤼셀에 본부를 둔 싱크탱크 lisbon council은 연구조사 보고서에서 경쟁력 있는 EU 건설을 위한 lisbon agenda의 우수 모델로 핀란드를 선정했다. 핀란드는 14개국 중에서 생산성 증가와 인적 자원개발 지원 항목에서 최고점을 획득했다.

핀란드 교육이 이처럼 세계 최고 수준으로 인정을 받는 이유는 최고 수준의 교육시스템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핀란드 교육시스템의 목표는 ‘모든 사람이 자신의 출신과 경제적 배경에 구애받지 않고 자신이 타고난 재능을 발휘할 수 있도록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초등학교에서 대학에 이르기까지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다양한 성인교육기관들이 활성화되어 평생교육시스템까지 갖추고 있다. 부정부패 없는 청렴한 정치 문화도 이러한 교육시스템이 정착하고 변화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

핀란드 교육의 성공 뒤에는 평생교육의 큰 틀에서 인적자원 개발에 투자되는 엄청난 규모의 교육예산이 자리하고 있다. 국가예산의 약 14%를 교육 분야에 할당하고, 국내총생산의 7%를 공교육비로 지출하고 있다. 수업료, 급식비, 교재비까지 모든 교육비용을 국가가 부담한다. 돈이 없어 공부 못한다는 말이 나올 수가 없다.

사교육을 담당하는 학원이 없는 것은 물론, 과외도 피아노 등 예술분야에 한해 소수만이 받을 뿐이다. 20여 개의 대학 모두가 정부의 소유이며 정부가 모두 재정을 부담하여 무상교육이 이루어지고 있고, 종합기술전문학교들은 산업현장과 밀접하게 연계되어 있다. 매년 약 100만 명의 핀란드 국민이 성인교육프로그램에 참여하고 있다. 경제활동 인구 5명 중 한 명꼴로 국가가 공짜로 시켜주는 직업교육을 받는다. 평생교육의 큰 틀에서 교육시스템이 살아 움직이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는 교육철학도 당연히 남다르다. ‘경쟁에서의 승리’가 아닌 ‘공동체 시민으로 성장’하도록 하는 것이 핀란드 교육의 목표이자 철학이다. 지역, 성별, 빈부격차에 관계없이 평등한 교육기회를 누릴 수 있는 것도 모두 이러한 철학 덕이다. 뿐만 아니라 핀란드의 학교들에는 복지담당관, 심리학자, 특수교사들이 배치돼있어 학생의 심리적, 신체적 사회적 발달을 체크하면서 학생들의 학습과 어려움을 진단하고 해결해 주고 있다. 학생 개개인의 학력성취 수준에 따른 지도를 가능하게 하는 힘이기도 하다. 1등과 꼴찌에 상관없이 이런 교사들의 개별지도로 공평한 수월성 지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다.

핀란드의 교육에 대해 우리가 가장 크게 오해하고 있는 부분은 바로 영어교육이다. 핀란드의 영어경쟁력은 영어몰입교육보다도 오히려 모국어 교육의 토대 위에서 이룬 성과이기 때문이다.

핀란드가 가장 중시하는 교육은 읽기다. 단순한 지식 축적이 아니라 생각하는 힘을 기르는 데 중점을 둔 교육법과 습관화된 독서, 높은 도서관 활용 시스템으로 읽고 쓰는 능력이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학생들을 길러낸 것이다. 다시 말해 어렸을 때 모국어인 핀란드어를 완전히 학습하였기에 다른 과목도 자신감 있게 해결해 나갈 수 있는 것이다.

마지막으로 꼽을 수 있는 핀란드 교육의 성공 배경은 바로 우수한 교사들이다. “Teachers, teachers, and teachers”로 요약될 정도로 우수한 교사의 확보와 교사의 질을 높이는 교사교육 그리고 그에 따른 사회적 대우가 자리 잡고 있다. 교사가 국가 교육과정을 바탕으로 수업과 평가에서 자율권을 행사하면서 자율적인 경쟁을 유도하고 있는 것이다.



국민적 교육주권운동을 벌이자

그렇다면 인적 자원이 최고의 국가경쟁력이라는 한국사회에서 교육시스템의 대안은 어떻게 만들어야 할까. 핀란드의 교육경쟁력에서 무엇을 배워야 할까. 이 시대를 살고 있는 보수, 진보 진영뿐만 아니라 현장의 교육전문가들도 국민과 토론하고 소통하며 찾아야 할 대안이다.

영어몰입교육, 자율형 고교 확대, 입시제도 개선, 대학평등화나 자율화 등 부분적인 처방을 통해 백년대계인 교육을 바로 잡기에는 우리의 교육 현실은 너무 복잡한 문제들이 얽혀있다. 중요한 것은 1920년대부터 무상의무교육을 추진하면서 평생교육시스템으로 국가적 인적 자원을 길러온 핀란드의 교육경쟁력이 한국의 교육개혁 과제에 많은 시사점을 던져주고 있다는 사실이다.

사교육비, 대학등록금 걱정 없이 모든 국민들이 동등한 교육기회를 제공받을 수 있는 교육체제는 어떻게 가능한지 국민 모두가 나서 해법을 찾아야 한다. 헌법에 명시된 교육권을 보장받기 위한 국민적 교육주권운동을 벌여야 한다. 교원노조, 교육전문가 단체들은 국민과 학생들에게 희망을 주는 대안적 정책과 비전을 만드는 주체가 되어야 한다. 또한 도시와 농촌, 경제적 배경에 구애받지 않고 학생 개개인의 창의성과 학업 능력을 길러주기 위한 대안적 공교육 운동에 나서야 한다. 끝으로 중앙집권적인 교육체제와 입시제도의 개선만큼 중요한 것은 학부모와 학생들에게 신뢰와 존경을 받기 위한 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이다. 교사들이 꼴찌에게도 용기와 희망을 줄 수 있을 때, 교사들이 진정 학생들의 희망이 될 때 핀란드식 교육시스템도 가능한 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