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지도/꽃보다사람-가져온좋은글

[스크랩] 선물

반짝이2 2009. 4. 26. 00:27


선물


나에게는 김강석이라는 어린 스승이 있습니다..

강석이는 나에게 중학교 1학년 까까머리 중학생으로 남아 있습니다.. 강석이를 만난 지는 이십년이 넘었습니다. 강석이는 내가 초임발령을 받고 근무하던 학교에서 처음 맡았던 담임반 아이였습니다.


 2학기가 시작되던 1985년 9월 8일, 초가을에 첫 발령을 받았습니다. 9월 3일까지 이 학기발령을 기다리다가 단념을 하고 4박 5일의 일정으로 지리산등반을 떠났습니다. 아주 여유있게 지리산 종주를 마치고 산을 내려와 부모님께 전화를 드렸습니다. 부모님께서는 발령이 났으니 어서 학교로 가라고 재촉을 하셨습니다. 등산복차림으로 서울로 올라와 학교에 들러 인사부터 드리고 다음 날 부터는 서울 사는 언니네 집에서 언니 옷을 입고 출근했었습니다.

 정신없이 한 학기를 보내고 이듬해 담임을 맡고 보니 아이들이 귀엽고 사랑스러웠으나, 늘 할 일이 많고 정신이 없었습니다.


 첫 담임을 맡아 아이들을 구체적으로 책임 맡으면서 두 가지 원칙을 세웠습니다.

하나는 최대한 편견 없이 각각의 아이들 관점에서 아이들을 이해하도록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아이가 학교를 결석하거나 아이와 만나서 이야기해도 이해 안 되는 경우에는 가정방문을 하여 아이들의 생활을 이해한다는 것이었습니다.

 그 당시 나에게 맡겨진 아이들은 68명이었습니다. 6개의 모둠으로 나누어 모둠활동을 했습니다. 한 모둠에 11명-12명이었지요. 강석이는 모둠원들과도 잘 지내고 학급 친구들과의 관계도 좋았습니다. 가끔 손등이나 손톱검사를 하면 때가 낀 손톱과 손등 때문에 나로부터 잔소리를 듣고 따로 검사를 맡기 위해 교무실에 들르기도 했지만 늘 생글거리며 웃는 얼굴에 인사도 잘했습니다. 가족구성원은 엄마와 둘이서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 반 아이들에 대한 개별면담이 한바퀴 돌고, 토요일에는 모둠별로 행주산성의 해지는 풍경을 보러가는 만남을 진행하기도 하면서 재미있게 생활하던 중 5월이 되었습니다.

 5월 15일이 스승의 날인데, 강석이는 5월 12일부터 5월 14일까지 결석을 했습니다. 결석은 고사하고 지각한번 안하던 강석이가 삼 일 간 결석을 하니 걱정이 되었습니다.

 5월 14일 오후, 수업을 마치고 가정방문을 하기로 했습니다. 강석이 와 친한 아이들 셋과 나는 수업을 마치고 서둘러 강석이네 집으로 갔습니다. 지금은 서울시 강서구 가양동이 신도시가 되었지만 당시 그곳에는 난지도 쓰레기하차장이 있었습니다. 난지도 쓰레지장을 지나서 버스로 5분정도 지나면 낮은 산과 개천이 있고 강석이네 동네가 있습니다.

 우리는 강석이네 집을 찾아갔습니다. 강석이네는 허름한 단층주택의 방 두 개를 빌려서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가 강석이네 방문 앞에서 자리 잡고 있는데, 대문에 강석이가 나타났습니다. 강석이는 우리를 보자 반가워하기는 고사하고 달아날 준비부터 하였습니다. 나는 아이들과 함께 강석이를 붙잡고 밖으로 나왔습니다. 강석이 말에는 엄마가 인근에 있는 작은공장에 다니시는데 어두어져야 돌아온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엄마는 강석이가 결석한 사실을 모른다는 것입니다.

 우리가 집에 찾아온 것에 대하여 화를 내는 강석이를 데리고 강석이네 동네에 있는 작은 야산 아래 개천으로 갔습니다. 개천가에는 아카시아나무가 몇 그루 있었습니다. 우리는 아카시아나무 잎사귀를 꺾어서 가위 바위 보를 하면서 아카시아 잎 따기 놀이를 하였습니다.


 놀이를 하는 중간 중간에 나는 강석이 에게 말을 걸었습니다.

 “엄마는 무슨 공장에 다니시지?”

 “플라스틱 제품 만드는 공장이예요.”

 “주로 무엇을 만드시지?”

 “뭐든지 만든대요. 플라스틱그릇이랑 바가지요. 그리고 커다란 함지박도 만드시구요. 밥상도 만들었어요.”

“ 저녁밥은 집에 와서 너랑 함께 드시니?”

“ 잔업이 있는 날은 밤늦게 오세요. 잔업이 없으면 엄마가 집에 와서 맛있는 것도 해주시고함께 저녁밥을 먹어요. 엄마는 야근하는 날도 많아요.”

“강석이 엄마를 만나 뵙고 갔으면 좋겠는데 오늘은 늦게 오실까?”

“나 학교 안간 거 이야기하실 거죠?”

“참 그런데 너 왜 학교 안 온 거지?”

“우리 엄마는 나 결석한 거 모르셔요.”

“너 학교 결석한 사실은 내가 비밀로 해줄 께. 그런데 학교 안 오고 뭐했었지?”

“저 사실은요, 스승의 날이 내일이쟎아요. 애들은 다들 용돈을 모아 선생님 선물을 산다고 하는데, 저는 용돈을 안 받거든요. 저도 선생님 선물 드리고 싶었어요. 그런데 지난 주에 옆집누나가 난지도에서 되게 예쁜 목걸이를 주워왔다고 보여주었어요. 그 정도 예쁜 목걸이라면 선생님 선물로 드려도 좋을 것 같아서 저도 주워보려고요....”

“그럼 삼일동안 선물 찾으려고 다녔던 거야?”

“.........”

나는 강석이의 손을 잡았습니다.

“강석아, 김강석! 나는 선물을 받은 거나 다름없다. 내일부터는 학교 오도록 해, 알았지?”


강석이는 맑은 눈으로 나를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나는 강석이를 꼬옥 안아주었습니다.


여러 가지 생각이 스치고 지나갔습니다. 나는 강석이가 학교에 오지 않은 이유에 대하여 정말 여러 가지 걱정과 생각을 많이 했었습니다. 그러나 강석이가 담임선생인 내게 줄 선물을 마련하고 싶어서 난지도 쓰레기장을 돌아다니느라 결석을 했을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할 수 없었습니다. 강석이와 내가 자란 환경이 너무 다르기 때문에 나는 강석이와 같은 방식으로 선물을 해결하려고 고민하지 않아도 되었으므로 ......


 우리가 이야기를 많이 나누고, 동네 앞 분식점에서 떡볶이를 먹고 나서 집에 돌아오니, 강석이 어머니께서 집에 계셨습니다. 반갑게 맞아주셨습니다. 인사를 하고 쥬스를 한잔씩 마셨습니다. 강석이의 성격이 좋다는 이야기를 나누고 인사를 드리고 일어섰습니다.

 강석이 어머니께서 서둘러 나가시더니 조금 뒤에 커다란 보따리를 들고 돌아오셨습니다.

 우리 집까지 와주신 강석이 선생님이신데 이 선물은 꼭 받아주시면 좋겠다는 것입니다.

 나는 가정방문을 다닐 때에는 선물을 받지 않는 것이 원칙이라고 말씀드리고 정중하고 단호하게 거절하였습니다.

 강석이 어머니는 그 자리에서 보따리를 풀어서 선물을 보여주셨습니다. 강석이 어머니공장에서 생산해 낸 플라스틱 작은 밥상과 예쁜 플라스틱 컵들이었습니다.

 “와 예쁜 밥상이네. 강석이 어머님기술자시구나.”

“예 선생님, 우리 엄마공장에서요. 플라스틱으로 예쁜 그릇이랑 여러 가지 만들어요. 원래 엄마가 스승의 날 선생님 선물로 가져가라 했는데요, 사람들이 좀 싸구려라고 해서......”

“선생님이 보기에 밥상은 아주 예쁜데, 강석이가 좋다면 이 컵들은 친구들에게 주고 이 밥상은 선생님이 가져가서 쓰는 것이 어떨까?”

“진짜요? 선생님 마음에 들어요?”

“그래, 강석아! 선생님은 강석이 어머님께서 만드신 이 밥상이 너무 마음에 들어.”

가정방문을 할 때 선물을 안받겠다는 원칙과 상관없이 나는 그 플라스틱 밥상을 받기로 결정하고 컵들은 함께 온 우리반 친구들에게 나누어 주었습니다.

 강석이는 플라스틱 밥상을 다시 보자기에 싸서 마치 춤을 추듯이 걸으면서 버스정류장까지 왔습니다. 우리가 탄 버스가 떠날 때까지 강석이는 내내 환한 웃음을 지으며 손을 흔들어주었습니다. 나는 지금도 플라스틱 가게를 지나갈 때마다 강석이의 그 즐거운 표정과 걸음걸이가 생각나면서 기분이 좋아집니다.


  그날 강석이의 맑은 눈을 보면서 두 가지를 결심했습니다.

 하나는 교단에서 아이들을 만나는 동안, 아이들의 행동이나 생각에 대하여 내 기준을 들이대면서 선입견을 갖고 함부로 재단하지 않겠다는 다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에게 문제가 생겼을 때에는 반드시 아이들을 직접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또 하나는 이렇게 우리아이들의 가정환경과 처한 조건이 다른 상황에서는 촌지는 물론 받지 않을 것이며 스승의 날 선물 또한 받지 않겠다는 결심을 하였습니다. 그로부터 이십년이 흐른 지금까지 강석이는 내가 만난 첫 번째 어린제자이면서 늘 내 심장 한 켠에서 맑은 눈으로 나의 두가지 결심을 살아있게 하는 스승이기도 합니다.





 



출처 : bumomam
글쓴이 : 씨감자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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