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책읽어주는여자

완전에 가까운 결단

반짝이2 2009. 5. 10. 10:08

 

완전에 가까운 결단

 

2008년은 수백만 명이 나라의 자존심과 국민의 건강주권을 팔아먹은 이명박 정권을  규탄하며 촛불을 거세게 든 역사적인 해였습니다.

2008년은 전태일 열사가 태어난 지 60년이 되는 해이기도 합니다.

전태일 열사는 1948년 8월 26일, 대구에서 태어나셨습니다.
58명의 노동시인들이 전태일 열사 탄생 60주년을 기념하여 쓴 시를 엮은 시집에는

전태일 열사를 추모하는 시들에서부터 오늘의 노동 현실과 노동자들의 투쟁 모습을 생생하게 표현한 시인들의 시들이 담겨 있습니다.

그리고 2006년 타계한 故 박영근 시인이 전태일의 삶을 어린이들에게 전하려고 창작했지만 죽음으로 인해 안타깝게 완성하지 못한 동화도 실려 있고요.

  

『완전에 가까운 결단』이라는 시집의 제목은 전태일 열사  일기의 한 구절에서 가져 왔습니다.


“이 결단을 두고 얼마나 오랜 시간을 망설이고 괴로와했던가?

지금 이 시각 완전에 가까운 결단을 내렸다.

나는 돌아가야 한다… 내 이상의 전부인 평화시장의 어린 동심 곁으로…

나를 버리고, 나를 죽이고 가마”

(1970년 8월 9일의 일기)

 

시집에 실린 좋은 시 한편을 소개합니다.

"우공이산"의 우화처럼 바위 위에 씨앗을 심는 우직한 사람들에 의해

역사는 한걸음 한걸음씩 앞으로 나아가는 게 아닐까 싶습니다.

 

 

바위 위에 씨앗을 심는다  

                                              김기홍

길은 보이는 것만이 길이 아니더라
어미 애비 조 이삭 보리 이삭 이고 지고
걷다 넘어지다 산언덕 흙집에 들고
도시로 간 사내들 간간이 길 막혀
사람의 길을 내다 손목이나 발목을 팔고 돌아온 길

평탄한 것만이 좋은 길이 아니더라
때로는 길인지 안방인지 별천지인지
잠들어 잃어버린 시간의 주인은 그저 꿈일 뿐
곧게 뻗은 길은 미몽의 터널로 이어져
사람의 마을은 죄다 부서진 환상의 헛간에서
눈 뒤집힌 걸구들만 뒤엉켜 전쟁의 상흔을 떠올릴 뿐

우리 바라는 길은 순순히 문을 열지 않더라
누군가 가자했던 그 길은 무너지거나 닫혀있고
집채만 한 바위가 어느새 떡 버티고 서서
더 이상 너희들의 길은 없다 눈 부라리며
가라 무지갯빛 꿈을 내려놓고 돌아가라는데

멀다 험하다 돌아설 길이었으면
희망의 보따리는 챙기지 않았으리라
누군가 걷다 만 길도 고쳐서 가고
막힌 길은 뚫어야 길이 되는 법
오늘은 세상 큰 바위에 씨앗을 놓으리라

바위 위에 심은 작은 생명이
싹도 틔우기 전 바람에 날리거나 메말라 죽을지라도
수천수만 씨오쟁이에 꿈틀대는
평화의 씨앗을 심고 또 심나니
농익은 사랑을 깔고 북돋으면
군사독재보다 거대한 게걸스런 자본의 바위
권력의 향수에 마비되어 굳어버린 탐욕의 바위
끝내 부드럽고 작은 뿌리에 쪼개지고 부서져
무지렁이 가난한 꿈의 길은 열리리니

오늘 그리고 내일도 검은 바위 정수리에
씨앗을 묻는다
다리 잘린 나무는 앉은 채로
팔 잘린 나무는 맨몸으로
하찮은 것들이 서로 모여 풀꽃 눈빛 반짝이며
희망을 심는다 꿈을 심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