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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학원 운동’이 필요하다 / 이범

반짝이2 2009. 6. 23. 12:11
‘탈학원 운동’이 필요하다 / 이범
한겨레
» 이범 교육평론가
많은 사람들이 사교육의 문제를 단순히 ‘돈’의 문제로 간주한다. 물론, 돈 문제는 매우 중요하다. 헌법 31조에 의하면 대한민국 국민은 균등한 교육 기회를 가져야 한다. 그런데 사교육을 마음껏 활용할수록 특목고와 명문대에 진학하기 유리해지고 이를 통해 좋은 교육 기회와 권력을 독점한다면, 이것은 헌법 정신에 정면으로 위배되는 것이다. 여기에 더하여 부모들의 사교육비 지출이 노후 생활 기반을 취약하게 만들고, 교육비 걱정으로 인한 출산율 저하가 미래의 한국 경제를 허약하게 만드는 것까지 고려하면, ‘돈’의 문제는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다.
 

그런데 ‘돈’의 문제 이외에, 사교육이 학생들의 인성에 미치는 영향도 만만치 않다. 첫째, 주류 사교육은 ‘수동적인 반복 학습’을 조장하여 학생들의 집중력을 약화시킨다. 학생들은 동일한 내용을 방학 때 학원에서 미리 배우고, 학기가 시작되면 학교에서 배우고, 학원에서 다시 한번 배운다. 게다가 중간·기말고사 기간이 닥치면 학원에서 해주는 총복습 정리를 듣는다. 엄마가 하라는 대로 학원과 학교를 왕복하기만 하면, 같은 내용을 적어도 네 번씩 배우는 것이다! 오늘부터 즐겨 보는 드라마를 매회 네 번씩 보라. 정신적으로 얼마나 늘어지겠는가? 우리는 어린 세대에게 ‘수동적 반복 학습’을 강요함으로써 ‘집중력 떨어뜨리기 훈련’을 시키고 있는 셈이다.

 

둘째, 주류 사교육은 공부 기술과 자기주도적 학습 능력을 약화시킨다. 학원에서는 학습의 계획·실행·평가·대안 수립 등 전 과정을 교습자가 주도하므로, 학생들이 복습 기술·관리 기술 등의 자기주도 학습에 필수적인 공부 기술을 습득하기 어렵다. 특히 공부 기술은 중학생 시절에 집중적으로 형성되는데, 이 시기에 주요 과목을 모두 사교육에 의존하는 학생이 많다. 엄마들은 항변한다. “우리 애는 머리가 별로 좋지 못해서 학원빨로라도 성적을 유지해야 돼요.” 그 결과 고등학교에 들어갈 때쯤 되면 ‘머리가 별로 좋지 않으면서 공부 기술마저 없는’ 최악의 조합이 완성된다.

 

셋째, 주류 사교육은 학생들의 창의성을 떨어뜨린다. 일각에서는 학원교육이 ‘주입식 교육’이라는 점을 문제로 지적하지만, 사실 학교도 주입식 교육을 하는 마당에(초등학교는 다소 나아졌지만 중·고등학교는 여전하다) 이 점을 학원교육의 폐해로 지적하는 것은 온당하지 않다. 하지만 예전에는 학교 수업이 끝난 다음에 자유 시간이 많았다는 점을 상기할 필요가 있다. 이러한 ‘자유 시간’의 존재야말로 주입식 학교교육에도 불구하고 창의성과 진취성을 유지시켜준 요소였다. 하지만 90년대 중·후반부터 학원업계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학생들의 자유 시간이 격감했다. 일본 국립교육정책연구소에 의하면, 한국 학생들은 일본 학생보다 무려 7배나 많은 시간을 학원에서 보낸다!

 

‘탈학원 운동’은 사교육비를 줄이기 위해서뿐만 아니라, 학생들의 온전한 지적 성장을 위해서도 반드시 필요하다. 마침 정부도 ‘사교육 없는 학교’를 지정하고 나섰다. 학원강의의 대체물을 제공하고, 학생들이 학교에서 더 많은 시간을 보내도록 하자는 것이다. 그런데 ‘요소 투입을 늘리자’는 것은 전형적으로 토건업적인 발상 아닌가? 교육은 소프트웨어와 조직의 개혁이 핵심이다. 방과후 학교는 도깨비방망이가 아니다. 정규 수업의 효율을 높이고, 어떻게 공부할지 몰라 헤매는 학생들을 보살필 방법부터 강구해야 한다. 그리고 각 지역의 공부방과 도서관 운동 등 넓은 의미의 대안교육 운동을 학교 안으로 끌어들여야 한다. 그렇게 된다면 학교는 탈학원 운동의 구심이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범 교육평론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