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젼교조 시국선언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

반짝이2 2009. 7. 1. 12:00

어릴적 선생에 대한 기억

이회창은 지난 대선에서 자신은 어린시절 밥을 먹지 못해 , 배고픔을 다래기 위해서 수돗물을 먹고 배고픔을 달랬다고 한다. 이회창의 아버지는 일제시대에 잘나가던 법원 서기보(?) 였던가? 해방후에는 법관으로 임용(?) 되었던 것으로 기억하고 있다. 순전히 기억에 의존하는 관계로 이회창의 아버지가 해방후와 전쟁통에 어떤 생활을 했는지는 알 수 없다. 단지, 다들 우물물도 없었던 시절에 이회창이 배고픔에 수돗물을 먹을 수 있는 환경에서 생활했다는 사실이다. 이회창의 어린시절에 수돗물을 먹을 수 있는 환경이란 별로 배고파 본적이 없었다는 반증이기도 하지만, 이회창 정도 되는 사람이 배고플 정도였으면 절대 다수는 굶주림에 시달리고 배고파 죽어가는 사람이 많았음을 미루어 짐작해 볼 수 있겠다.

글쓴이가 이야기 하고자 하는 바는 글쓴이의 어릴적 기억에도 배고파 굶주려 수돗물을 먹은 기억이 새롭다. 뛰어 놀다보면 바로 배가 꺼져 수돗가로 달려 간다. 그리고 수돗물을 벌컥 벌컥 마시다 보면 배고픈 것은 다 잊어 버리고 만다. 그당시 대다수(?)의 학생들이 그랬던 것 처럼 글쓴이의 집도 그리 잘난 집이 아닌관계로 재때에 공납금을 낼 처지가 아니였다.

그 시절 글쓴이에게는 기억에 남는 2명의 서로 다른 선생을 담임으로 만난다. 한분은 수업이 끝나고 나면, 혼자서 그림을 그리기 좋아하는 여선생님, 또다른 선생님은 학생들과 놀아 주기를 좋아하는 아주 젊은 남선생님이였다.
그림 그리기를 좋아하는 여 선생은 수업시간만 되면 공납금을 내지 않는 아이들을 불러내 매일 회초리를 들고 타작을 주로 하지만, 수업이 끝나고 나면 여선생님의 극히 개인적인 취미(?) 생활을 즐기신다.

하지만 젊은 남선생은 수업시간이나 조.종례시간에 공납금으로 매타작을 하는 것을 본적이 없다. 이분은 아마도 교무실에 가서는 교감이나 교장에게 많은 이야기를 들어야 했을 것이다.

이 젊은 선생과는 잊지 못할 추억이 있다. 교실 환경미화를 할때, 여러 애들과 같이 직접 어항을 만들고, 그 안에 넣을 고기와 수생식물을 같이 채집(수렵)하여 넣는 것이다. 이때 글쓴이도 선생과 같이 하게 되었다. 그런데 이때 글쓴이의 꼬라지는 참으로 가관이였다. 구멍뚫린 신발에는 비가 오면 빗물이 들어오는 것이 였다. 그날은 비가 와서 마르지 않는 상태에서 길바닥의 물들이 신발로 들어와 축축하게 젖어 버렸다.

이때 이 선생이 글쓴이의 손을 붙잡고 시장안에 있는 신발가게로 끌고가 새로운 운동화를 사주는 것이 아닌가? 나는 선생마다 참으로 다르구나 했다. 어쩌면 나에게 선생에 대한 환상을 심어준 분일지도 모른다. 무언가 가르치려 한것이 아닌 몸으로 실천하고 보여주는 서로 다른 두 선생에서 존경할 선생은 누가 되어야 할까?

극히 개인적인 일이나 학생들의 입장을 전혀 고려하지 않고, 자신의 이득과 조직에 충실한 보통선생과, 자신에 대한 화갈 미칠것을 뻔히 알면서도 화가 학생에 미치지 않도록 자신의 선에서 정리하고 표를 내지 않는 선생, 사실 나에게 신발을 사준 선생이기 때문에 존경했을 수도 있다. 또다른 선생은 나에게 매로만 인식되고 우아한 고고한척 한 선생이기 때문에 그렇게 존경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과외 포기 확약서

고등학교 때. 가정 형편이 그리 좋지 않던 글쓴이는 실업계학교로 진학을 하였다. 이유는 빨리 사회에 나가 돈을 벌어야 하고, 대학은 자신의 힘으로 돈을 벌어서 가면 된다, 부모님에게 부담을 주지 않아야 한다는 극히 자연스런 동기에 의해서 였다. 대부분의 동기들이 그런 과정을 걸쳤다. 그렇다고 해서 우리 동기들이 중학교때 머리가 나쁘거나 공부를 못했던 사람은 없었다. 이들은 중학교때 과외라고는 받아본적이 없지만, 대부분 한 학급 70명이상 중 10등이내에 든 친구들이다.그래야 원서를 써주었다. 한마디로 머리하나는 타고난 사람들이였다. 실업계고교는 자격증을 따야한다. 상업계는 부기/주산 등 학원을 다니듯 대다수 다른 학교 학생들은 별도로 자격증반 학원을 다닌다. 하지만 우리 동기나 선배들이 자격증 따기 위해 학원을 다녔다는 이야기를 들어본적이 없다. 하지만 이들은 몇개의 자격증을 따고 졸업을 했다. 사회는 이들에게 공돌이로 살아가도 살만한 좋은 시스템을 제공하지 않았다. 그래서 이들 대다수는 곧바로 또는 재수해서 대학진학을 했다.

어찌되었던 이때 사단이 벌어졌다. 대머리 전두환께서는 과외금지 확약서를 모든 학교에 보냈다. 그리고 선생들은 이를 부모님에게 보내서, 확약서에 서명을 하라는 것이다. 물론, 전두환이 직접 그런 지시를 내렸다고 보지 않는다. 그 밑의 교육부의 훌륭(?)하신 분들이 일처리를 그리 했을 것이다.

어찌 되었던 그 과외포기 확약서가 우리들에게도 배달되었다. 그냥, 부모님에게 이야기해서 도장을 꾹하고 찍어 학교에 제출해도 되었을 것이다. 아니면, 부모님 몰래 도장을 찍어서 제출하면 그뿐이였을 것이다. 글쓴이가 왜 밝히지 않아도 되는 글쓴이의 학창시절을 이야기 했을까?

실업계고등학교를 다니는 학생들을 대상으로 과외금지 확약서라 이게 말이 되는 이야기인가? 이처럼 우리의 교육계에 종사하는 교육부관계자와 선생들은 개념을 집에 두고 다녔던 것이다. 글쓴이는 이때도 나의 어릴적 학생에 관대하고 자신에 당당한 선생을 떠올렸다. 글쓴이가 생각하는 선생의 표상이였기 때문이다. 아마도, 고등학교때 이를 거부한 교장이나 교감이나 선생이 한사람이라도 있었다면, 글쓴이는 어릴적 신발을 사준 선생을 떠올리기 보다는 좋은 선생 밑에서 교육을 받았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을 지도 모른다.

전교조 시국선언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

글쓴이는 전교조의 시국선언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를 글쓴이가 걸처간 몇몇의 선생으로 부터 이야기를 하고자 하는 것이다. 우리들에게는 본을 받고, 영향을 받은 선생이 있다. 아마도 학창시절을 돌아보면 손가락으로 꼽아야 할 정도이거나 아예 없을 수도 있다. 극히 예외적으로 많은 선생을 만나 축복받은 사람이 있을 수 있다. 물론, 저렇게는 살지 말아야지 하는 선생도 반면교사가 될 수 있으니 존경(?)해 줄만 할지도 모른다. 영웅이나 열사만 역사는 기록하지 않고 역적이나 배우지 말아야할 악적도 역사는 기록하고 있으니 말이다.

어찌되었던 조직과 자신만의 안위에 순응하는 극히 인간본위의 보호본능이 발동하는 선생과, 자신을 희생하더라도 공익에 충실한 극히 미약한 몇몇의 시국선언을 하는 선생들일지라도 지지할 수 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하다. 선생은 지식을 가르치는 지식장사꾼이 아니라 자신의 향기로 미래를 만들어갈 학생에게 말로, 몸으로, 행동으로 보여주어야 할 사람들이 때문이다.

이들 전교조가 가장 대한민국의 가장 기초적인 근간을 이루는 '민주','언론','자유'에 대해서 시국선언을 하게되었다는 현실이 어처구니 없고, 발언을 했다고 잡아가는 질 낮은 민주공화국이지만 말이다.

어쩌면 시국선언을 하는 많은 분들도 극히 이기적이게도 시국선언을 하지 않는다면 자신이 살아온 인생자체를 부정하는 행위이니 이기적이게도 나서서 부당한 처벌을 받는 것일지도 모르겠다. 이들은 양심을 저버렸을때의 고통이 육체적, 금전적고통보다 우위에 선자들이다.

전교조를 지지하지 않았다고 해도, 말할 자유를 억압하는 교육부나 이명박을 지지할 하등의 이유가 없다. "나의 생각과 다르더라도 생각이 다르다는 것 만으로 그들이 핍박받는 다면 나는 그들의 편에 설 것이다."라고 말했다는 볼테르를 들먹이지 않더라도(볼테르가 하지 않았다는 설도 있다) 권력자로 부터 핍박받는 다면 기꺼이 핍박받는 자의 편에 서 주어야 하지 않을까?

글쓴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고는 그저 뒤에서 글로써 전교조를 지지하는  역할이 전부 일지 모른다. 그래도 하지 않는 것보다는 하는 것이 글쓴이가 <양심의 자유> 침해가 금전/육체적고통보다 우위에 있는 극히 이기적(?)인 생각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도 글쓴이는 전교조가 시국선언을 하지 않는 꿈같은 세상을 꿈꾼다. 하지 못하는 세상이 아닌, 할 필요조차도 없는 세상말이다.

현재 편견타파를 주제로 블로거 뷰 뉴스를 발행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글도 그 편견타파의 일환의 글이다.
이글은 전교조에 대한 편견을 가지고 있는 분들에게 보내는 메시지이기도 하다. 전교조를 지지하던 지지하지 않던 중요한것이 아니다. 대한민국은 양심의 자유에 따라 행동할 자유가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