쌍용차 문제의 본질은 해고 노동자들이 벌이는 안나가고 버티기가 아니라,
기술력만 빼먹고 도망간 상하이차와 그짓거리를 눈뜨고 버젓이 허락해준 정부가 만들어낸 예고된 비극이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충분히 공적자금을 투여해서 해고없이 회사를 살릴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 무조건 자본시장논리에 따라 정리해고 시키고, 내부갈등으로 몰아가는 것입니다.
아래 글은 7.5일 전국 분회장결의대회에서 해고자 가족인 박정숙씨가 읽었던 글입니다. 모두 눈물로, 가슴으로 받아안은 글이었습니다.
우리 부부는 대학시절 부산에서 만났고 그 당시 차를 무척이나 좋아한 남편은 막 출시되어 도로를 누비던 '무쏘'에 반해 대학 졸업과 동시에 쌍용 자동차에 입사하게 되면서 신혼살림도 아는 이 하나 없는 낯선 평택에서 시작하게 되었죠. 그게 벌써 16년 전 일이네요.
공부 잘하는 첫 째인 15살 딸과는 다르게 둘째인 13살 아들 녀석은 운동 좋아하고
친구 좋아하면서 하루하루 즐겁게 사는 녀석입니다. 작년 가을 쯤 그런 녀석이 걱정이 되어 "넌 나중에 도대체 뭐가 되고 싶니? 꿈이 뭐야?" 라고 물었더니 이 녀석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대뜸 한다는 말이 "아빠 같은 아빠요. 그래서 아빠랑 같이 쌍용 자동차 다닐 거예요."라고 말하더군요. 공군사관학교에 가서 파일럿이 되겠다고 어릴 적부터 말하던 녀석이었고 그렇게 되기를 바라고 있던 저였기에 잠시 잠깐 어이가 없었습니다.
일찍 사춘기가 찾아온 녀석한테 화는 못 내겠고 "그래 그것도 괜찮겠다. 15년 정도 있으면 가능한 일이겠네. 아빠와 아들이 나란히 출근하면 멋지겠는데?"하고 말해 주었죠. 퇴근하고 돌아온 남편에게 이 얘기를 해 주면서 당신은 성공적인 삶을 살았다. 아들이 아빠를 닮고 싶어 한다는 거, 아빠처럼 되고 싶어 한다는 거 흔치 않은 일이지 않느냐 라고 말해줬더니 남편도 기분이 좋은지 아들 녀석 엉덩이를 한 번 툭 치더군요. 무뚝뚝한 경상도 사나이인 우리 남편의 아들에 대한 애정 표현이죠.
똑똑하고 야무진 우리 딸의 꿈은 어릴 적에도 그랬고 지금도 대통령이 되는 게 꿈입니다. 그때는 꿈은 커서 좋다만 너무 실현 가능성이 없지 않나 라는 생각도 했었지요. 꿈꾸는 것을 위해 노력만하면 못 이룰 꿈이 없다 선생님들께서도 아이들에게 말씀하시죠? 그러나 지금은 오히려 대통령이 되겠다는 딸의 꿈보다는 아빠와 함께 쌍용 자동차에 다니고 싶다는 아들의 꿈이 이루어지기 어렵게 되었습니다. 그런 아들의 꿈을 끝까지 지켜주기 위해 힘든 줄 모르고 옥쇄파업 45일차를 맞이하며 고생하고 있는 남편. 이쯤에서 몇 달치 위로금 더 받고 희망퇴직을 하란 얘기도 종종 듣지만 동료들로부터 일 잘 한다 인정받던 남편은 자신의 해고를 절대 납득할 수 없어 이건 아니다 아이들에게 떳떳한 아빠가 되기 위해서라도 끝까지 싸우겠다는 생각으로 파업에 동참했고 1000 여명의 아버지들의 절실함과 억울함이 모여 스스로 공장 문을 닫아 놓고 옥쇄파업에 들어가게 된 것입니다.
이 투쟁에서 이겨서 당당한 모습으로 돌아오겠다던 남편의 말에 도리어 힘을 얻어
남편만 사지에 남겨 놓을 수 없다는 생각에 쌍용 자동차 가족대책위원회(이하 가대위) 활동에 참여한지 한 달이 넘어가고 있습니다. 이번 기회를 통해 우리 부부는 부부가 아닌, 같은 곳을 바라보며 같은 뜻을 가진 '동지(同志)'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명확하고 객관적인 정리해고 기준도 제시할 수는 없지만 나가라는 회사 측. 평소 근무태도와 인사고과 안 좋은 사람은 살았고, 그동안 열심히 일했다고 사장상을
여러 차례 받은 사람은 해고되고, 명절에 상사에게 떡 값 한 번 안 준 게 잘못이었고, 상사의 비리를 눈 감아 주지 못하고 항의했던 게 잘못이었고, 그저 가족들 위해 열심히 일한 모습이 다른 곳에 가서도 성실하게 살 것 같다는 것이 해고의 이유가 되었고, 부모님께서 재산이 있을 것 같아 먹고 살 걱정 없어 보여 해고당하고.......
중국 상하이차에 정부가 쌍용차를 매각하면서부터 일이 꼬이기 시작했습니다. 기술유출과 투자 자금 미지급 등으로 대주주인 상하이차가 입장이 곤란해지자 무책임하게 법정관리를 신청하게 되었고 회계법인이 제시한 2646명의 정리해고 밖에는 다른 구조조정 방식이 없다는 어처구니없는 결론 때문에 작업 지시서에 적힌 대로 생산라인에서 묵묵히 차만 만들던 근로자 중 이미 1670명의 근로자가 희망퇴직을(우린 절망퇴직이라 부릅니다) 하셨음에도 불구하고 해고의 부당함에 맞서 싸우는 남은 976명의‘함께 살자'는 호소에도 귀 기울이지 않고 끝자리까지 맞춰 정리해고를 해야만 한다는 숫자놀이에만 급급한 회사 측과 법정 관리인과 정부. 정작 책임져야 할 당사자들은 쏙 빠진 채 노-노 간의 갈등을 일으켜 놓고 손 안대고 코 풀려고 하고 있습니다. 45일 동안 수많은 일을 겪으면서 진실들이 왜곡되어지거나 감춰지는 현실을 경험하고 나니 눈과 귀를 막고 살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습니다.
우리 가족대책위들 원래 이런 사람들 아니었습니다. 남편 사랑 받으며 자식들 뒷바라지하며 예쁘지도 않지만 밉지도 않은 얼굴에 웃음 가득 머금고 남하고 말싸움 한 번 안하고 마음 상한 일 있음 집에 와서 혼자 씩씩거리며 내 한탄 들어 줄 유일한 아군인 남편의 퇴근 시간만을 기다리던 그저 그렇게 평범하게 하루하루 살았던 이름도 없는 아줌마들, 누구누구의 엄마들, 새댁들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이제는 집회에 나가 힘들지만 팔뚝질도하며 노래도 부르고 투쟁 구호도 따라 외치고 길쌈놀이 때 빙글빙글 돌며 오색 끈을 엮고 풀고 하느라 온 몸이 땀범벅이 되어도 부끄러운 것이 없을 만큼 뻔뻔해졌습니다. 남편도 못 바꾼 우릴 누가 이렇게 바꿔 놓았을까요?
회사는 쌍용차공장에 물을 공급하는 펌프 모터 배관을 6월 30일 고의적으로 파괴하였고 공장 내 물 부족현상이 발생하여 노동조합은 긴급히 기술자를 불러 1일 새벽에 응급조치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회사 측은 1일 오전 또 다시 관리직 5명을 동원하여 펌프 모터를 파괴했습니다. 그것도 도저히 복구가 불가능할 정도로 배선을 절단하고 모터와 컨트롤러를 파괴하는 파렴치한 작태를 저질렀습니다. 경찰 병력이 이틀에 걸쳐 공장주변을 막아서는 기회를 틈타 파괴한 것입니다. 이 일이 있기 전 강제로 단수를 시키기 위해 시청에 고의로 수도세를 미납했습니다. 그리고 수도세 미납을 핑계로 시청에 평택공장 단수 요청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단수요청이 받아들여지지 않자 직접 파괴 행위를 한 것입니다. 얼마나 비열하고 치졸한 행위입니까! 앞에서는 대화 운운하면서 뒤에서는 먹는 물조차 단수시키기 위한 음모를 획책했던 것입니다. 회사 측은 옥쇄파업이 들어가기도 전에 이미 용역업체와의 계약을 마친 상태였고 운영자금 부족으로 경영상의 어려움을 겪고 있다는 이유로 부득이 정리해고를 해야 한다던 회사 측은 용역깡패에게는 28억이라는 천문학적 돈을 지불해 놓고는, 3천만 원이 없다며 고의로 수도세를 체불하고는, 시청에 단수조치를 요구한 것입니다. 28억이라는 용역비는 아깝지 않고, 조합원들이 먹고 사용해야 하는 물 사용료 3천만 원은 아깝다는 소리는 1000 여명의 노동자들을 죽이겠다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란 말입니까! 단수 조치를 취한 것을 보면 다음에는 단전조치까지 못 취할 것도 없다는 생각이 드니 치가 떨리고 입이 바짝바짝 마릅니다.
회사 측이 지난날의 동료들과 용역을 앞세워 공장안으로 들어온 6월 26일과 27일.
서로 격렬한 싸움을 하던 중 용역이 휘두른 소화기에 맞아 치아가 13개나 부러지는 중상을 입은 노동자를 병원으로 후송하던 중 회사 측 직원들이 환자 후송차의 운전자를 끌어내려 폭행을 하는 일까지 벌어졌습니다. 전쟁 중에도 인도주의적 차원에서 환자는 보호받고 치료받을 수 있는 것인데 하물며 얼마 전까지 함께 일했던 동료에게 이 같은 일을 했다는 것이 지금도 믿어지지 않습니다. 이런 회사의 행동과 요즘의 상황에서 드러난 것처럼 회사는 대화의 의지가 전혀 없다는 것 입니다. 아니 이런 비열한 행동 아니고는 경영진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무것도 없다는 자신들의 치부를 드러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희는 노-정 교섭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려 하는 것이고 공적자금 투입으로 회사를 정상화시켜 달라 정부와 채권은행인 산업은행에 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민주주의의 가장 큰 덕목은 '소통‘이라 했습니다. 청각 장애인들도 수화를 통해 소통합니다. 시각 장애인들도 점자를 통해 소통합니다. 일자리를 지키기 위해 ‘함께 살자’외치는 아버지들의 외침에 귀 막고 전교조 시국선언에 참가한 교사들을 연행하고 징계하는 이 정부와는 도대체 어떤 방법으로 소통을 해야 하는 걸까요? 요 며칠 공장을 드나들 경우 현행범으로 체포할 것이라며 공장 주위를 물샐 틈 없이 경찰들이 지켜 서 있으면서 가족들의 출입조차 막는 것은 물론 조리되지 않은 음식 재료의 반입을 막고 소지품 검사는 물론 남편 얼굴 보려고 온 아내들의 이름까지 적고 있습니다. 가족을 만날 자유, 음식과 물을 먹을 자유, 생각을 말할 자유조차 없는 이 나라가 헌법에 명시되어 있는 민주주의 국가가 맞습니까?
식사 때마다 수저통에 남아있는 주인 잃은 남편의 수저 한 벌을 볼 때마다 맘이 짠합니다. 내일 아침 식사 때는 수저통이 텅 비겠지 저녁 식사 때는 네 식구 함께 밥상에 둘러 앉아 무릎 부딪히며 식사할 수 있겠지 기대하며 보낸 날이 벌써 45일 째입니다. 오늘은 남편의 생일입니다. 생일 때마다 상다리 부러지게 차려준 건 아니었지만 뜨끈한 미역국 끓이고 네 식구 둘러앉아 케이크 먹으며 그저 소박하고 평범하게 생일을 보냈었는데 이번 생일엔 그 소박한 생일파티마저도 못하였습니다. 오늘 아침 남편의 얼굴이라도 볼까하여 회사 앞에 갔었습니다. 저 외에도 남편과 아빠의 얼굴을 보기 위해 온 가족들이 3~40명이 모여 있었습니다. 출입이 자유롭지 못할 거라 짐작은 했었고 아이들만이라도 공장안으로 들여보내 달라고 울며불며 통사정을 해 보았지만 경찰들은 상부의 지시에 따를 뿐이라며 눈도 꿈쩍하지 않더군요. 경찰들과 말씨름을 하던 틈을 타 재빠르게 아이들은 엄마 손을 거쳐 물건처럼 담장 위로 건네져 아빠들 품에 잠시 안겨볼 수 있었습니다. 그 장면을 지켜본 엄마들로 인해 회사 정문 앞은 눈물바다가 되었고 악을 쓰며 경찰에게 대들어 보았지만 그들도 어쩔 수 없다는 대답만 되풀이 할 뿐이었습니다. 아빠는 아이를 통해 자신을 추억하고, 아이는 아빠를 통해 미래를 꿈꿉니다. 1000 여명의 아빠들이 당당한 모습으로 가정으로 돌아와 두 팔에 사랑스런 아이들을 품을 날이 멀지 않은 날에 찾아올 것이라 굳게 믿습니다.
2009년 7월 5일 전교조분회장결의대회에서
쌍용자동차 정리해고반대가족대책위 박정숙 드림
쌍용자동차 가족대책위 박정숙 씨의 눈물 어린 호소와 비판에 결의대회장은 눈물로 적셔졌다. 결의대회에 참가한 교사들은 쌍용차노조 투쟁기금으로 1339만 7130원을 모아 전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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