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시인의 숲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반짝이2 2009. 3. 22. 11:58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성 미 정

 

 

처음엔 당신의 착한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그러다 그 안에 숨겨진 발도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다리도 발 못지 않게 사랑스럽다는 걸 알게 되었습니다

어느 날 당신의 머리까지 그 머리를 감싼 곱슬머리까지

사랑하게 되었습니다

   

당신은 저의 어디부터 시작했나요

삐딱하게 눌러쓴 모자였나요

약간 휘어진 새끼손가락이었나요

지금 당신은 저의 어디까지 사랑하나요

몇 번째 발가락에 이르렀나요

 

혹시 아직 제 가슴에만 머물러 있는 건 아닌가요

대답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그러했듯 당신도 언젠가 저의 모든 걸

사랑하게 될 테니까요

 

구두에서 머리카락까지 모두 사랑한다면

당신에 대한 저의 사랑은 더 이상

갈 곳이 없는 것 아니냐고요

이제 끝난 게 아니냐고요

아닙니다

 

처음엔 당신의 구두를 사랑했습니다

이제는 당신의 구두가 가는 곳과

손길이 닿는 곳을 사랑하기 시작합니다

언제나 시작입니다.

 

  

  <故 정해진 열사의 신발>

 

학교를 제외한

내 주변 많은 사람들은 구두를 신지 않는다.

요즘에야 다들 옛날만큼 구두를 많이 신지 않아서지만

한편으론 구두를 신고 일하는 직장을 다니는 이가 많지 않가 때문이다.

 

내가 자주 가는 노동세상 사무실,

가끔 벗어놓은 신발들을 살펴보게 된다.

엄마 따라온 아가들의 알록달록 예쁜 신발에서부터

젊은 여성들의 코가 날렵한 신발

요즘 요행하는 스니커즈에 이르기까지

뒤축이 한쪽으로 비스듬이 닳은 신발들을 보노라면

주인을 따라 다녔을 그 신발들의 길이 생각킨다.

 

곧 버려질듯 낡은 신발을 보면

주인의 기쁨과 슬픔에

가장 낮은 곳에서 함께 했을 신발의 한생(一生)이 가만히 생각킨다.

언젠가는 주인의 발을 떠나 거침 없었던 한생을 마감하게 되겠지만,  

오늘 집으로 돌아가는 주인의 발은 아직  그의 것이다. 

 

그리고

좋은 세상 만들어가는 사람들의 '신발'이 되어 

시궁창에 가라면 시궁창에 갈 것이고 가시밭길로 가라면 가시밭길로 갈 것이라시던  

그분의 말씀을 생각한다. 

세상 누구보다 먼 길을 다니시는 그분의 신발은

그분이 즐겨 입는 두루마기와는 어울리지 않게 투박한 등산화이다.

 

그분의 바램대로

좋은 세상 만들어 갈  신발들이 많아졌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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