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책길/시인의 숲

꽃기침

반짝이2 2009. 3. 13. 13:50

봄가뭄을 달래주는 단비가 내리고 있다.

산수유 뿐인가 했더니  했더니

목련도 어느새 껍질이 터졌다.

참, 장하다.

어떻게 이렇게 여린 꽃잎이

저렇게 두터운 껍질을 뚫었을까.

 

저기 햇살이 달려옵니다

양지쪽으로만 고개를 돌리는 꽃과 달리

봄이 와도 찬바람 불어오는 쪽을 향해

의연히 서 있는 목련처럼

꽃눈 내밀 때의 첫 마음으로 돌아가


-도종환   '십년' 

 

3월은 사자처럼 찾아들고 양처럼 떠나간다고 했다.

이 비 그치면 더욱 눈부실 풍경들에 미리 설랜다.

 

 

 

꽃기침 

 

                                             박후기

  

 

꽃이 필때

목련은 몸살을 앓는다

기침할 때마다

가지 끝 입 부르튼 꽃봉우리

팍팍,터진다

 

처음 당신을 만졌을 때

당신 살갗에 돋던 소름을

나는 기억한다

징그럽게 눈 뜨던

소름은 꽃이 되고

잎이 되고 다시 그늘이 되어

내 끓는 청춘의

이마를 짚어주곤 했다

 

떨림이 없었다면

꽃은 피지 못했을것이다

떨림이 없었다면

사랑은 시작되지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더이상

떨림이 마음을 흔들지 못할 때,

한 시절 서로 끌어안고 살던 꽃잎들

시든 사랑 앞에서

툭,툭 나락으로 떨어진다

 

피고 지는 꽃들이

하얗게 몸살을 앓는 봄밤

목련의 등에 살며시 귀을 대면

아픈 기침 소리가 들려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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