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지도/가끔 쓰는 일기

어머니의 주름살

반짝이2 2009. 4. 21. 10:58

       비오는 월요일, 오늘이 무슨 날인지 아이들에게 물었더니 다행히 아는 녀석이 있다.

       짧은 동영상을 보며 이런저런 얘기를 나누는데...

 

       서른이 넘어 두 눈을 잃고 시각장애인이 된 후배가 생각난다.

       이제 제법 자란 두 아이의 아버지이기도 한 그는

       얼마 전에 생계를 위해 지압침술원을 열었다.

       앞날이 창창한 박사였던 그가.

 

       금요일이면 같은 시각장애인들끼리 영화도 보고 춤도 추는데

       스스로 몸을 움직일 수 없는 중증 장애인들에 비하면

       자기들은 힘든 것도 아니다

       내가 시각장애인이 되지 않았더라면

       어디 가서 이렇게 춤 배워볼 생각이냐 했겠냐던

       시각장애문화원 원장님,

       감긴 눈동자와 사람 좋아 보이는 웃음도 생각난다.

 

       벌써 노안이 오려는지

       작은 글씨 흐릿해지려는 내 눈만 해도 이렇게 불편한데

       한 번도 밝은 세상 본 적 없는, 그 분들 심정을 한자락이라도 헤아릴까

       멀쩡한 다리로 계단만 몇 번 오르내려도 숨이 가쁜데

       바깥 출입 한 번 하려면, '결심'을 해야하는 중증장애인들 고통을 만분지 일이라도 헤아릴까만

 

       일년에 한 번, 특집방송 하듯이 오늘 하루만 생각할 것이 아니라

       성한 사람, 불편한 사람, 모두가 함께 살아갈 좋은 세상 만들기 위해

       

       내 성한 손, 성한 다리로  

       그 분들 손 잡으러 걸어가고 싶다.

      

      

     어머니의 주름살

                                               李水花

       어린 시절 두 눈을 잃어버린
      점자도서관 이선생님은
      어느날 책을 읽다가 사람에게 주름이 있다는 말에
      깜짝 놀라 자기 얼굴을 두 손으로
      조심  조심 어루만져 보았답니다.

      팽팽한 살갗 그 어느 곳에
      굵디 굵은 주름이 질 수 있는지
      여린 두 손끝의 촉감만으로는
      도무지 이해할 수가 없었답니다.

      그러던 그 어느 날엔가
      몸져 누우신 어머니의 이마를
      마른 손끝으로 짚어보다가
      깊게 패인 주름살을 만나고서야
      사람의 살갗에도 주름이 질 수 있음을
      비로소 알아차릴 수가 있었답니다.

      그리고 한 고비 한 고비
      가파른 생의 비탈을 넘을 때마다
      우리들의 가슴 속에도 어느덧
      굵은 주름이 접히고 있음을

      모진 세월의 바람이 휘청일 때마다
      부풀었던 우리들의 꿈에도
      성큼 성큼 깊은 주름이 패이고 있음을

      손끝에 묻어 있던 어머니의 주름살이
      아득한 기억 저편으로 기울어가고
      매끄럽던 그 이마에도 한 겹 한 겹
      거친 주름이 날을 세우면서부터
      조금씩 조금씩 깨닫기 시작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