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지도/가끔 쓰는 일기

박치기왕 김일 - 스승과 제자

반짝이2 2009. 4. 28. 15:48

집집마다 테레비가 있지 않았던 60년대.

테레비가 있는 집은 그야말로 동네 사랑방이었다.

 

특히 김일의 레슬링이나 홍수환의 타이틀매치가 있는 날이면

동네 남자란 남자는 다 모여서 지붕이 날아가도록 고함을 지르며

두 주인공의 영욕을 함께 했던 기억.... 40대라면 기억에 남는 어린 시절의 한장면이다.

 

형제끼리 이불 위에서 엎치락뒤치락, 별다른 도구 없이도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놀이.

나 역시 집안의 남자형제들이 이 단순한 놀이를 지겹도록 즐기는 걸 보며 자랐다.

도대체 멀쩡한 사람들끼리 이유없이 치고받고 싸우는 걸 보며 왜 좋아할까

아버지나 오빠, 동네 남자들이 도무지 이해가 가지 않았다.

 

그래도 아슬아슬 질 것만 같은 경기에

언제쯤 김 일 선수가 박치기로 진검승부를 걸까

툇마루에 앉아 손바닥으로 눈을 가려가며 보았던 아슴한 기억....

 

그런데

어느날부터인가, 깔끔한 유니폼에 스폰서도 빵빵한 프로야구가

대머리대통령의 어설픈 시구와 더불어 시작되더니 

피터지는 권투나 레슬링은 자취를 감추었다.

김일이니, 역도산이니, 안토니오 이노끼니 하는 이름들도 사람들에게서 잊혀졌다.

 

이 이름들을 다시 만난 건 지식채널-e

첫 회를 보고 가슴이 먹해서 아껴 아껴가며 4회를 보았다.

 

"너는 조선인이니 박치기를 해야한다."

머리를 단련시키기 위해 이마에 굳은 살이 배기도록 매질을 해댔던 스승 역도산.

 

"내가 너를 미워서 때리는 것이 아니다.

내가 더 이상 네게 매질을 하지 않을 때는 나와의 인연이 끝난 줄로 알아라."

오직 그 스승에 대한 맹목이다 싶을 정도의 존경과 믿음으로 수련의 시간을 버텨낸 김일.

 

나는 아직도 레슬링이 얼마나 훌륭한 스포츠인지 모르겠다.

(고구려벽화에도 있을 정도이니, 정말 오래된 인류의 스포츠임엔 틀림없다)

그러나,

대책없는 어설픈 연민과 동정보다는

참으로 상대의 장래를 책임지고자 하는 엄격함이

스승과 제자 사이의 참된 일면임에 진심으로 동의한다.

 

비단 이것은 스승과 제자 사이에만 적용되는 것은 아닐 것이다.

후배에게 모진 소리를 하고 돌아서 우는 선배의 심정이 그럴 것이며

잘못을 저지른 자식에게 종아리를 치는 어머니의 심정이 그럴 것이다.

 

김연아와 같은 우아함도 없고

천문학적인 광고수익도 없었지만

"미덕은 양심에서 나온다."고 진심으로 믿었을

한세기에 한사람 뿐인 박치기왕 김 일 선생,

명예와 사람을 중요시했던 그의 뒤에는

역도산과 같은 큰 스승과 이노끼와 같은 동료가 있었다.

 

그가 그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