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여름은 유난히 장마가 깁니다.
오뉴월 날씨가 이 모양이니 여름장사는 글렀습니다.
농사짓는 분들도 냉해 걱정을 하신다 하니
저같이 일없는 사람도 마음이 편칠 않습니다.
오늘도 하루종일 하늘이 (옛말 빌자면)저녁굶은 시어미상이더니, 그예 비가 또 오십니다.
검은 구름 몰려다니는 하늘을 올려보다가
아, 그래도 이 비가 반가운 분들도 있겠구나
문득 생각에 우산을 내리고 비를 맞아 보았습니다,
평택,
전쟁 아닌 전쟁터에 계신 그 분들
그 분들, 가슴에 입술에, 타는 목마름에 이 비가 조금이나마 위로가 되었으면.
그 징한 헬리콥터도 오늘밤엔 뜨지 못할 것이고
온몸에 묻은 독한 최루액도 이 비가 깨끗이 씻어 주었으면 좋겠습니다.
지난 토요일, 평택역에서 쌍차로 향했던 우리가 요구했던 것은
그 무슨 대단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소화전의 물조차 끊겨, 씻을 물은 고사하고 마실 물조차 없어
"물 좀 들여달라."는 절박한 문자에
"물차라도 들어가게 해 달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택도 없었습니다.
소독만이라도 하도록 들어가게 해달라는 의사들을 연행하고
평화적으로 행진하는 사람들에게 헬리콥터로 최루액을 투하했습니다.
아파트 안으로 흩어진 사람들을 무차별로 구타하고 연행하였습니다.
사측은 평화적 해결을 위해 모든 가능성을 열어놓고 대화하겠다는 노조의 제안에도 불구하고 아예 협상테이블에 나오지도 않았습니다.
오히려 용역깡패들을 동원하여 새총질을 일삼고 모든 것을 노동자들의 탓으로 돌리고만 있습니다.
참말로 생각 같아서는
돌멩이, 쇠파이프 아니라 그보다 더한 것도 들고 싶었던 것이 그 곳에 있던 사람들의 공통된 심정이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럴 수도 없고 그래서도 안 됨을 우리는 잘 알고 있습니다.
저들은 어찌 해서든
싸우는 노동자들과 국민들을 갈라 놓으려 온갖 악선전을 늘어 놓고 있습니다.
필명도 바꿀 새 없이 인터넷을 돌아다니는 한나라당 알바들의 댓글만 봐도
저들이 우리를 갈라 놓으려 얼마나 안달인지를 짐작하고도 남습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실로 필요한 '창'은
주권자인 국민대중의 마음을 움직일 '감동'입니다.
국민들은 선봉대가 휘두르는 쇠파이프가 아니라
연로한 신부님과 스님이 보여주신 뙤약볕 오체투지의 삼보일배에서 감동을 느낍니다.
용산 남일당 천막성당에서 철거민들과 먹고 자며 용역깡패들에게 얻어맞고 끌려가던 신부님들에게서 더 많은 감동을 느낍니다.
그러므로 지금 우리가 진정으로 고민해야할 것은
어떻게 하면 더 많은 사람들이 공유할 진정한 감동을 만들 것인가 하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에게 진정으로 필요한 '칼'은 '작지만 확실한 승리'입니다.
국민 80%가 대통령의 얼굴조차 보기 싫어하고 목소리조차 듣기 싫어하지만
그의 임기가 아직 1300일 이상 남아있는 현실이 답답합니다.
'탄핵'을 외쳤지만 '탄핵'할 법적 권리가 애초에 우리에게 주어져 있지 않음을 확인했습니다.
전직대통령이 부엉이바위에서 뛰어내려 죽었는데도 전혀 변하지 않는 MB에 억이 막힙니다.
백주대낮에 온국민이 보는 앞에서 미디어악법을 날치기통과시키고, 이름만 바꾸어 4대강에 삽질을 시작하고, 개헌논의까지 스믈스믈 피어올리는 MB가 징글징글합니다.
이 답답한 심경을 뚫고 한 발 앞으로 나가기 위해
지금 우리에게 실로 필요한 것은 그것이 무엇이 되든, 미디어악법 원천무효 소송이 되건, 10월 보궐선거 승리가 되던 '확실한' 승리입니다.
국민 스스로, 자신들의 의지로 일구어 낼 작은 승리가 정말이지 절실한 때입니다.
그 힘이 어디로부터 나오냐구요?
우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습니다.
"모든 권력은 국민으로부터 나온다."는 헌법 제1조의 절실한 자각이 나부터 시작해서 네게로 갈 때,
그래서 우리가 백만이 될 때, 우리는 이겨왔고 이길 수 있습니다.
그 길은 이미 뚫려 있습니다.
아고라에 만발한 분노와 공감의 토론들, 불로그마다 카페마다 무성한 댓글들은 그 길가에 핀 꽃들입니다.
광장을 가득 메운 촛불은 그 꽃들의 향연입니다.
씨뿌리지 않고 꽃보기를 바랄 수 없고, 꽃없이 열매가 있을 수 없습니다.
가을의 수확을 위해 봄여름을 들에서 바치는 농부의 노동이 절실한 때입니다.
지금, 바로 여기서, 나부터 시작합시다.
키보드를 두드리고 촛불을 켜고 한푼두푼모아 신문광고도 냅시다.
지루한 이 장마도 반드시 끝이 있듯이
갈수록 태산인듯한 이 날들도 반드시 끝이 있을겝니다.
날치기 국회를 보고, 진보연대 상임고문이신 오종렬 선생님께서 쓰신 글입니다.
많은 것을 곰곰 생각케 하시는 글, 일독을 권합니다. 기왕이면 추천도, 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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