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마음의 지도/가끔 쓰는 일기

보이는 적과 보이지 않는 적

반짝이2 2009. 8. 13. 19:01

옥쇄농성 77일차, 굴뚝 고공농성 86일차, 공권력 전면투입 18일차만에 파업은 일단 막을 내렸다.

농성에 참가한 조합원을 포함, 현재 70명이 구속되거나 구속영장이 신청된 상태여서 97년의 연세대 한총련 사건 이후, 최대의 공안사건이 되리라는 전망이다.

 

물과 음식, 그리고 의료지원같은기본적인 인권마저 무시하거나 진압과정에서 보여 준 경찰의 과잉행동은 온/오프에서 많은 사람들의 공분을 샀다. 진압봉을 사정없이 내리치는 장면에서 80년 광주를 떠올리며 팔뚝에 소름이 돋은 사람들도 있을 것이다.

 

지켜본 사람들의 심정이 이럴진데, 안팎에서 고스란히 이를 현실로 겪어야했던 조합원들과, 그 가족들의 후유증은 말로 다 못할 것이다. 가대위에서 보내온 편지를 보면 초등학교 5학년인 어린아이가 밤마다 오줌을 싼다는 것이다. 죽을지도 모른다는 절박한 심정으로 하루하루를 버텼던 농성조합원들이나. 남편생각, 아빠 생각에 피가 말랐을 가족들의 고통은 차마 헤아리기가 두렵다.

 

 

사진출처: 경향신문

 

특히 한솥밥 먹던 노동자들끼리 농성자와 사측으로 갈라져 서로 새총을 겨누어야했던 뼈아픈 기억은 오래도록 사람들을 괴롭힐 것이다. '저들'은 그렇다 치더라도,  '우리끼리' 서로를 겨누었던 기억은 몸의 고통보다 마음의 고통이 큰 법이다. 따지고 보면 안에 있던 사람들이나 밖에 있던 사람들이나 다 '살자고' 한 일이다. 몰론 '함께 살자'는 자와 '나라도 살자'는 자가 어떻게 도덕적으로 같을 수 있겠는냐는 물음에는 따로 답이 있겠지만, 나를 내어놓고 함께 살기를 결심하기가 어디 그렇게 쉽기만 한 일인가. 설령 그것만이 유일한 답이라 할지라도.

 

경찰의 진압장면을 보면서 하도 답답해서 전경으로 전역한 후배에게 전화를 걸었다. 

 

"정말 저렇게 해도 되는거야? 저렇게 밖에 못해? "

 

"선배, 진압 들어갈 때 전경들도 얼마나 벌벌 떠는데요. 쇠파이프, 화염병 보면 나도 을지 모른다는 생각 진짜 들어요.

게다가 먼저 공격 안하면 내가 죽는다는 게 전쟁터 논리 아닙니까.

거기 제정신인 애들 하나도 없을 겁니다. 거긴 전쟁터예요. 전쟁터에서 제정신인 놈 없어요. 다들 미치"

 

사진출처: 경향신문

 

엊그제까지만 해도 같은 라인에서 조업하던 동료들을 서로 원수로 만들고

전투모를 벗기고 보면, 어쩌면 아직 뺨에 솜털도 마르지 않은 갓 스무살의 젊은이들에게 곤봉을 들려

제 동포에게 휘두르게 만든 놈들은 누구란 말인가.  

 

소위 '살아남은'자들이라도 언제까지 살아남을 수 있을지 기약할 수도 없고

진압에 투입된 전경들도 군복 벗으면 분명 88만원의 비정규직 예비군일텐데

노동자와 노동자가, 노동자와 예비노동자가 서로 싸우고 미워하게 만든 자들은 누구인가?

이 비극의 진짜 주범은 누구인가? 

 

따지고 보면 쌍용차의 오늘날과 같은 비극은 이미 2004년에 쌍용차가 상하이차에 매각될 때에 예비되어 있던 것일지도 모른다.

아래 두 기사는 '먹튀자본'으로서 상하이차의 면모를 잘 드러내준다.

 

  쌍용차가 2004년 워크아웃 기업으로 분류되어 상하이차에 매각될 때부터 기술 유출 유려는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조흥은행 등 채권단은 정부의 눈    치를 보며, 인수대금 5900억 가운데 4200억을 빌려주면서까지 49.82%의 지분을 넘겼었다.  인수 당시 상하이차는 △완전한 고용 승계와 △2008년까지 10억 달러 이상 투자, △2007년까지 33만대 생산 체제 구축 등을 약속했지만 아무것도 지키지 않았다. 오히려 2006년 상하이차는 산업은행의 2700억원 지원으로 대출금을 갚은 뒤 2004년 대출받을 당시의 특약을 해지해 버렸다. 그리고 올해 1월, 자본철수를 발표한 것이다.(09.08.07, 한겨레신문 발췌)

 한겨레 기사 보기 http://www.hani.co.kr/arti/economy/car/369975.html

 

  그동안 상하이차는 워크아웃되었던 쌍용차의 회생은 뒷전이고 기술유출을 반대하는 한국인 경영진을 경질하면서까지 최신기술을 빼갔다. 그들이 지불한 기술이전료는 통상 한 차종 개발비의 3분의1 수준에도 못 미치는 1200억원이란 헐값에 불과했고, 그나마도 지금까지 약속한 금액의 절반은 지급하지 않았다. (09.01.10, 서울신문 발췌)

 서울신문 기사보기

 http://media.daum.net/economic/others/view.html?cateid=1041&newsid=20090110041619973&p=seoul

 

그야말로 '먹고 튄' 것이다.

그리고 먹고 튀는 동안 우리 정부는 있는대로 돈 빌려주며 도와주었고.

튀는 자본 붙들자니, 다시 팔자니 몸집부터 가볍게 해야겠고 그러니 구조조정은 필수, 고통은 노동자들이 분담하라는 것이다.

 

'소리없는 대량살인'의 진원지는 실은 보이지 않는 곳에 있었던 것이다. 

 

 

안들어주면 죽겠다는 각오로 싸운 옥쇄농성의 결과로 노사합의(?)는 이루어졌지만

쌍용차가 다시 살아날 수 있을지는 아직 미지수다. 아니나다를까 해외매각설이 슬슬 피어오르고 있다.

교섭을 해야 할 노조의 간부 대다수는 구속 중이며, 농성에 참여한 비해고자 94명에게는 휴업명령이 떨어지는 등, 노조에 대한 탄압응 계속되고 있다. 당장 해고되는 정규직 노동자의 수는 줄였지(실은 줄어든 것도 아니다), 함께 옥탑에 올라갔던 비정규직 노동자들에 대해서는 일언반구도 없다.  어쩌면 쌍용차의 진짜 싸움은 이제부터가 시작인 것이다.

 

아마 우리 국민의 대다수는 2004년 쌍용차가 상하이차라는 해외자본에 매각될 때, 오늘과 같은 비극적인 사태가 오리라고는 생각하지 못했을 것이다. 정말로 무서운 것은, 우리가 미처 생각하지 못하는 사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어디선가 또 다른 쌍용차사태가 예비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무분별한 외자도입과 기업매각을 예사로 아는 무능한 정권 아래, 영업이익보다는 주가조작으로 인한 차익만을 노리는 주주자본주의가 우리 사회의 경제원리로 작동되는 한, 오늘도 '먹고 튈' 생각만 하는 해외자본은 한국을 놀기 좋은 사냥터로 여기고 들락날락 할 것이다. 그 사이 노동자를 비롯해 서민들의 삶은 박살이 날 것이고.

 

보이는 적보다 보이지 않는 적이 더 무서운 법이다.

적을 알아야 싸울 터인데, 눈 앞에 보이지 않는 적과 싸우려면 '보는 눈'을 키울 수 밖에 없다,

보는 눈을 키우려면 공부하는 수 밖에.

난맥상인 한국경제의 진짜 키워드가 무엇인지

어디를 공략해야 장기적으로 이길 수 있을지 공부하고

제대로 된 방향으로 실천을 집중해야 한다.

적어도 진짜로 이기고 싶은 마음이 있다면 말이다.

 

쌍용차 사태는 신자유주의 구조조정과 무분별한 외자유치(해외매각)이 어떤 폐해를 주는가를 고스란히 보여 주었다.

끝까지 도장공장에 남았던 노동자들의 헌신적인 투쟁에도 불구하고, 누구나 알다시피 이것이 끝이 아니다.

지금부터 우리는 무엇을 할 것인가?

 

우선, 구속자와 부상자들이 많다.

돈을 걷든, 탄원서를 모으든 그들부터 돕는 것이 누구나 할 수 있는 맨먼저의 일이 될 것이고

아고라가 되든 블로그가 되든 진실을 널리 널리 알리는 것이 두번째이고

다시 시작될 싸움에는 그들이 절대 외롭지 않도록 연대하는 것, 연대를 조직하는 것이 그 다음일 것이다.

만신창이가 된 그들이 또 다시 외로이 옥탑으로 올라가게 할 수는 없지 않은가.

 

뱀발: 쌍용차의 노동자들이 평택의 공장이 아니라, 상하이차 본사를 점거했더라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