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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노!노! 일제고사(1)

반짝이2 2009. 3. 30. 13:04
아들 두 놈이 일제고사를 거부한답니다
[노!노! 일제고사①] 시험 거부하며 전교조 선생님들께 보내는 글
송성영 (sosuyong) 기자

먼저 죄송한 말씀부터 올립니다. 이번에도 우리 아이가 '일제고사'를 거부하겠다고 합니다. 상식이 통하지 않는 추악한 현실이다 보니 선생님들께 현장학습을 요구한다면 분명 난감한 일이 될 것입니다. 그럼에도 현장학습 신청을 했습니다. 녀석이 원했고 부모로서 당연히 동의했습니다.

 

"시험 보는 거 싫어. 아직도 학교에서 억울하게 쫓겨난 선생님들이 그대로 있고, 아무튼 일제고사 보는 거 싫어. 그 시험 말고도 우리가 시험을 얼마나 많이 보는데."

 

지난 겨울 양심 바른 선생님들이 줄줄이 해직 당하는 것을 보고 울분을 참지 못했던 아이였습니다. 이번에도 그런 이유에서 거부한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일제고사' 보는 날 아빠와 단둘이서 독립기념관으로 현장 학습 갔던 일이 아주 기분 좋았던 모양입니다. 아, 녀석과 함께 현장 학습 갈 또 다른 녀석이 있습니다. 이번에 중학교에 들어간 동생 녀석이 있거든요.

 

녀석이 얼마 전 자신이 시험에 관한 시를 썼다며 줄줄줄 읽어 내리더군요.

 

시험

 

비가 내렸다

마음에도 내렸는데

엉덩이엔 번개가 쳤다.

 

눈이 왔다

눈을 밟고 놀고 푼데

찬바람만 쌩하니 분다.

 

비가 와도 눈이 와도 슬프다.

 

비가 와서 뭤하나

눈이 와도 뭤하나

 

서로 서로 따뜻하게

어울리면 그만인데.

 

  
지난해 일제고사 대신 체험학습의 기회를 주었다는 이유로 파면 또는 해임된 교사에 대한 소청심사위원회가 열리는 16일을 앞두고 전교조 서울지부 교사들과 학부모들이 11일 오후 서울 송파구 거여동 거원초등학교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어 해직교사 원상복직과 일제고사 폐지를 요구하고 있다.
ⓒ 유성호
일제고사

 

시라는 게 따로 있겠습니까마는 비 오는 날 낙서하듯 즉흥적으로 쓴 시라고 합니다. 정리가 덜 된 글이었는데 녀석이 '시험'이라는 제목을 덧붙이지 않았다면 뭔 뜻인지 아리송했을 것입니다. 녀석에게 꼬치꼬치 캐물었더니 비가 내린다는 것은 시험 문제지에 그어진 빗금을 의미하는 것이고 눈은 동그라미랍니다. 이해하셨겠지만 '엉덩이에 번개'는 선생님에게 얻어맞는 것을 표현한 것이랍니다.

 

"눈이 왔다는 것은 시험을 잘 본 건디, 왜 찬바람만 쌩하니 분다고 그려."

"시험을 잘 봐도 뭔지 모르게 불안해서······."

 

녀석은 좋은 점수를 받아도 왠지 모르게 마음이 불안하답니다. 시험을 잘 보건 못 보건 시험 자체가 자신을 불안하게 만들고 있다는 것이지요.

 

두 아들녀석이 일제고사를 안 보겠답니다

 

이게 어디 우리 집 아이에게만 해당되는 시험이겠습니까? 세상 모든 아이들에게 시험은 불안 그 자체일 것입니다. 잘 보든 못 보든 늘 불안하게 만드는 게 시험인 것이지요. 그런 불안한 '일제고사'를 거부하겠다는 것은 녀석에게 최선의 선택인 셈이지요. 시험이 어디 일제고사뿐입니까? 그 불안한 시험을 줄여나가도 시원찮은 판에 더 늘려나갈 수는 없잖습니까?

 

사실 '일제고사'를 거부한 녀석의 마음도 편치 않을 것입니다. 아무리 나름 신념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이제 겨우 중학교 2학년에 불과한 녀석입니다. 부모 자식의 관계를 떠나 녀석에게 이런 추악한 현실과 맞서게 하는 어른으로서 참담한 기분마저 듭니다. 가슴이 아픕니다.

 

하지만 이번 '일제고사' 거부는 좀 다를 것이라 봅니다. 이번에는 녀석의 동생뿐만 아니라 녀석과 뜻을 같이 하는 더 많은 친구들이 생길 것이라 봅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의 자녀들 역시 '일제고사' 대신 현장학습을 보내겠다는 결의를 했다니까요. 그 소식을 접하고 마음 한구석이 든든했습니다.

 

지난번에는 녀석의 학교에서 일제고사를 거부하고 현장 학습을 신청한 아이가 녀석 혼자였다고 합니다. 결국은 현장학습 처리가 되지 않았지만 말입니다. 하지만 이번에 전교조 선생님들의 자녀들까지 합세한다면 이제 우리 아이에게도 함께 할 친구들이 엄청 많이 생기겠구나 싶어 마음이 놓입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자녀들에게 일제고사 대신 현장학습을 보내겠다는 결의를 다졌다는 소식을 접했을 때 내심 불안했습니다. 그 말을 전한 전교조 선생님에게 농담조로 말했습니다.

 

"얼마나 참여할 수 있을까요? 지금의 전교조가 예전의 전교조와는 다르잖아요? 저들 말대로 전교조의 실체가 드러나겠죠?"

 

그렇습니다. 농담조로 말했지만 저는 참담한 마음으로 현재 전교조의 실체가 과연 어떤 모습인가? 따져 묻고 싶었습니다. 선배들이 해직과 옥고를 치러가며 일궈냈던 참교육의 초심으로 돌아가라는 시건방진 말을 하고 싶어서가 아닙니다. 뼈를 깎아내는 심정으로 전교조의 참 모습을 바로 보자는 것입니다. 절망적인 '일제고사'를 통해 새로운 전조교로 거듭 나자는 것입니다.

 

전교조 교사 자녀도 일제고사를 거부한다니 든든합니다만

 

지금의 전교조는 안과 밖으로 절망적이라고 봅니다. 미친교육에 미쳐 날뛰는 저들은 말할 가치도 없고, 학교라는 조직에서 불이익을 당하지 않기 위해 힘 있는 전교조에 가입한, 일테면 '보험' 삼아 전교조에 가입한 조합원들이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미친교육에 동승해 아이들 줄 세우고 함부로 매질하고 욕설을 퍼붓는 무늬만 전교조 조합원인 선생들 또한 적지 않다고 들었습니다.

 

자신의 자녀들에게는 경쟁에 뒤지지 않게 하기 위해, 단지 좋은 대학보내기 위해 학원에 과외까지 시키는 조합원들은 또 얼마나 많을까요? 현실적으로 실천하기 힘든 참교육의 원칙만을 고집하자는 것이 아닙니다. 최소한의 참교육 실천을 말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조합원의 수가 전교조의 힘을 좌우 하는 것은 아니라고 봅니다. 그 수가 아무리 많다 해도 교육현장을 엉망진창으로 만들거나 '보험' 삼아 가입한 전교조 선생님들이 많다면 전교조의 힘은 약해질 것이고 미친 교육을 내세우는 저들의 힘은 더욱더 거세지겠지요. 내 몸이 병들면 온갖 세균들이 침투해 온몸을 엉망진창으로 만들어 놓듯이 말입니다. 저들의 광적인 힘이 어디에서 나왔겠습니까?

 

교육은 아이들과 함께 가는 즐거운 여행길이 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힘들게 배움의 길을 가다가 잠시 쉬었다가는 즐거운 여행길 말입니다. 그렇다고 어디 즐거운 일만 있겠습니까? 때론 힘도 들겠지요. 힘들고 즐겁게 배우고 놀다가, 정신 나간 사람들이 길을 막고 아이들을 괴롭히면 맞서 싸우기도 하는 그런 길이 아닐까 생각해 보았습니다. 비현실적인 생각이라고요? 그게 비현실적이라면 그걸 현실로 만들어 나가는 것이 교육이 아닐까 싶습니다.

 

여행길은 가볍고 단출할수록 좋다고 봅니다. 이것저것 먹을거리들이 많게 되면 오히려 힘만 들고 음식이 상할 우려가 많습니다. 짐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고통이 뒤따릅니다.

 

전교조 회비를 보험금조로 내고 참교육과는 거리가 멀게 아이들을 가르치는 선생님들이 있다면 오히려 짐만 되지 아닐까 싶습니다. 이렇게 말하면 어떤 선생님들은 그럽니다.

 

"그래도 그나마 힘을 보태주고 있어 고맙지요."

 

수긍이 가는 말이라 할 수 있지만 제 생각은 좀 다릅니다. 전교조의 숫자는 초기에 비하면 엄청나게 늘었지만 그만한 힘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제가 말하는 힘은 전교조 대회나 시위 때 보여주는 군중의 힘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참교육을 외치는 목소리는 커졌지만, 실제로 교육현장에서 보여주는 참교육은 죽어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일제고사 관련 해직교사인 정상용(구산초), 김윤주(청운초), 박수영(거원초), 최혜원(길동초), 송용운(선사초), 설은주(유현초), 윤여강(관양중) 교사에 대한 심사가 열리는 16일 오후 서울 삼청동 교원소청심사위원회앞에서 해직교사들과 전교조 조합원들이 '징계 취소' 결정을 촉구하는 기자회견을 열고 있다.
ⓒ 권우성
일제고사

 

'참교육' 구호는 커졌지만 교육현장에서의 참교육은...

 

예전에는 '역시 전교조 선생님이라서 뭔가 달라도 다르다'는 존경어린 말들을 했지만 지금은 '전교조 선생님이라고 하지만 별 수 없네'라는 비아냥거리는 소리가 흘러나온 지 이미 오랩니다. 그런 별 수 없다는 말들이 왜 나오고 있을까요? 어디서 나올까요? 전교조가 내걸고 있는 참교육과는 무관하게 '보험증'을 지참한 전교조 선생님들이 적지 않다는 것과 무관하지 않을 것입니다.

 

전교조의 힘은 조합원 숫자에 달려 있는 것이 아니라고 봅니다. 단 한 사람의 참교육 선생님이 얼마든지 수많은 아이들을 감동시킬 수 있으니까요.

 

그렇습니다. 진정한 전교조의 힘은 대회장이 아닌 학교 현장에 있다고 봅니다. 실천이 없는 결의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오히려 잡음만 흘러나오게 할 것이고 결국 힘만 빠지게 될 것입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자신들의 자녀들을 '일제고사 대신 현장학습을 보내겠다'고 결의한 내용이 과연 얼마나 실천될까 걱정이 앞서는 까닭입니다.

 

그럼에도 전교조는 여전히 우리 교육의 희망입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이 무너지면 대한민국의 참교육이 무너져 내립니다. 지금은 최소한의 양심과 상식조차 통하지 않는 시대의 절망을 탓하기 이전에 먼저 전교조 스스로 처절하게 절망할 때라고 봅니다. 절망적인 현실을 바로 직시할 때 희망이 보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아이가 '일제고사'를 거부할 수 있었던 것 또한 해직과 옥고를 겪었던 수많은 전교조 선생님들이 일궈낸 힘에서 비롯된 것입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의 그런 고초와 힘이 없었더라면 우리 아이가 '일제고사'를 거부할 엄두도 못 냈을 것입니다. 여전히 양심 바른 평교사로 교육현실을 뼈아프게 견뎌오고 있는 선생님들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그런 선생님들이 교단을 아프게 지켜오고 있기에 전교조에는 희망이 있습니다.

 

우리 교육의 희망은 미친교육에 목을 매고 있는 저들이 아니라 전교조 선생님들의 참교육에 대한 열망에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또한 이번 '일제고사' 대신 자녀들을 현장학습을 보내겠다는 선생님들의 결의에 작은 희망을 걸어 봅니다. 희망을 걸지만 더 이상 선생님들의 희생을 강요하는 것은 아닙니다. 자녀들을 현장학습에 보냈다고 교직생활에 큰 불이익을 당하지 않을 것이라 들었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육의 희망은 선생님들에게 달려있습니다

 

서두르지 않고 기다리겠습니다. 이번에 실행하지 못하면 다음에 그 희망을 걸고, 그도 안되면 다음 기회에 넘기고 또 다음번에도 실행하지 못한다면 그 다음 번에 희망을 걸겠습니다. 다시 한번 더 말씀드리지만 전교조는 우리 교육현실의 유일한 희망이기 때문입니다. 그 희망에 속고 또 속는다 할지라도 희망을 걸 수밖에 없으니까요.

 

우리 집 아이들이 별쭝난 아이들이 되는 것을 원치 않습니다. 전교조 선생님들의 힘이 약 해질수록 우리 집 아이들은 학교에서 별쭝난 아이가 되고 말 것입니다. 신념이 있는 아이로 자라길 바라지만 다른 아이들과 신념이 다른 아이로 자라는 것 또한 원치 않습니다. 다른 아이들과 더불어 불안한 시험을 덜 볼 수 있는 학교에 다니길 바라고 있습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미우나 고우나 전교조 선생님들에게 희망을 걸 수밖에 없는 이유이기도 합니다.

 

쥐뿔도 모르는 시골 촌부가 글 몇 줄 안다고 꼴사납게 주절댄 것이라 받아 주시고 건방을 떨었다면 너그럽게 용서하시길 바랍니다. 저 또한 학부모된 자로서 과연 아이들에게 참교육을 제대로 시키고 있는지를 되돌아보겠습니다.

 

부디 해직당한 선생님들에게 힘을 주시고 그 선생님들에게 작은 힘을 보태고 싶어 하는 우리 아이들에게 희망을 주시기 바랍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