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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노!노! 일제고사(3)

반짝이2 2009. 3. 30. 13:08
"선생님, 이 시험 성적에 들어가나요?"
 교사는 그래도 괜찮다, 아이들이 고생
[노! 노! 일제고사 ③] 초등교사가 본 전국평가의 '허실'
이희진 (bbungou) 기자

오는 화요일(3월 31일)에 전국 초등학교 4학년에서 중학교 3학년까지 학생들은 교과학습 진단평가를 실시한다. 한번 연기되는 바람에 혹시나 했었는데 역시나 그냥 강행하나 보다. 가슴이 답답해지면서 지난 일들이 파노라마처럼 머릿속을 지나간다.

 

나는 작년에 대구의 한 초등학교 6학년 담임이었다. '무서운 6학년'이라는 말이 있긴 하지만 우리 반은 아이들 덕에 다행히 사고 없이 학년을 마무리할 수 있었다.

 

5천개 숫자만 가득 적힌 종이 

 

  
이명박 대통령 취임1년 맞은 25일 오전 서울 청와대 부근 청운동 동사무소 앞에서 청소년단체 '무한경쟁교육,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모임 세이노(Say-no)'가 기자회견을 열고 이명박 정부의 일제고사 부활 및 무한경쟁교육을 비판하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일제고사

 

졸업도 시키고 중학교 배정도 끝나 한숨 돌리고 있던 봄방학. 뉴스를 보니 며칠 전부터 임실에서 국가수준 성취도평가 성적을 부풀렸다고 전국이 들썩들썩했다. 그런데, 급기야 대구에서도 터졌단다.

 

기사를 보자마자 '에이쿠 '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바로 학교에서 전화가 왔다. 전국이 발칵 뒤집혔고 대구에서도 성적파문이 일어 대대적인 재조사를 할 예정이니까 우리 학교 자료도 다시 점검해야 한단다. 그날부터 나는 매일매일 근무시간 내내 숫자 맞추기를 해야 했다.

 

국가수준 성취도평가는 교육과정평가원에서 제공하는 통계프로그램을 사용해서 평가결과를 처리한다. 각 문항이 어떤 영역을 평가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보나, 어느 정도가 '기초학력'이고 어느 정도가 '우수학력'인지에 대한 등급기준이 교사에게 제공되지 않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사용하지 않으면 결과 처리를 할 수가 없다.

 

OMR카드를 사용하는 중고교에서야 프로그램 사용이 문제가 아니겠지만,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은 종이로 된 문제지와 답지로 시험을 치른다. 표집학급이면 학급 전체 학생의 OMR 카드를 교사가 옮겨 써야 하고 비표집학급인 경우에는 종이로 된 답지를 보고 학생이 쓴 답안을 모두 컴퓨터에 하나하나 입력해야 한다.

 

6학년의 경우 5개 과목이고 과목별로 30문항씩, 우리 반 학생은 33명이었으니까 5x30x33=4950. 아무것도 없이 약 5000개의 숫자만 가득 적혀 있는(더구나 그 숫자는 1~5밖에 없다) 종이를 들고 봄방학 내내 숫자 맞추기를 했다. 학생이 답한 답지와 프로그램에 입력된 답안이 일치하는지를 대조하고, 재대조하고, 반을 바꾸어 또다시 확인하고.

 

성적을 부풀리려는 의도였든 통계 실수였든, 혹은 누군가의 압력에 의한 조작이었든 사실과 다른 결과를 보고하고 국민들에게 알린 것은 잘못이다. 더구나 교사의 본분에서 평가가 큰 부분을 차지하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더욱 큰 잘못이다. 하지만 숫자 맞추기를 하면서 내 가슴은 계속 답답했다.

 

이 대목에서 지난해 있었던 이야기를 조금 해야겠다.

 

[사례 1. 너도나도 사투리 쓰는데 표준발음?]

 

시험 치는  내내 우리 반 아이들은 지친 모습이었다. 보통 때 치르는 시험보다 시간도 훨씬 길고 문항도  많으니 당연한 일이다. 더구나 시험 치는 방법이 달라 국가수준 평가를 치기 위해 따로 시험 치는 연습도 해야 했으니 아이들로서는 마치 계속 여러 번에 걸쳐 시험을 치는 느낌이었을 거다.

 

그래도 6학년은 좀 낫다. 3학년들은 2일 내내 치르는 시험에 완전히 녹초가 됐다. 특히 '읽기' 과목에서는 한 명, 한 명 밖으로 나와서 표준 발음으로 문장을 읽는 문제가 늘 포함되는데, 이때에는 교사도 학생도 참 난감하다. 더구나 지방이니 너도나도 사투리를 쓴다. 학생이 표준어로 발음하는지 아닌지를 교사가 구분하기 힘들다.

 

설혹 교사에게 표준발음을 완벽히 구분할 수 있는 능력이 있다 하더라도 학생이 문장을 읽어 내리는 속도대로 발음을 하나하나, 1교시 내내 채점하는 데 필요한 집중력을 과연 유지할 수 있을까. 집중력이 있더라도 그 시간 내내 공정한 기준으로 정확하게 채점할 수 있을까. 말이 국가수준 평가이지 어차피 동일한 기준으로 단순 비교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치러진 8일 오전 서울 미동초등학교 3학년 학생들이 가림막을 친 가운데 시험문제를 풀고 있다.
ⓒ 권우성
일제고사

 

[사례 2. 시험천국에 사는 아이들]

 

국가수준 성취도평가가 치러지기 한 보름 전부터 아이들이 부쩍 '국가수준 성취도평가 대비 문제집'을 들고 다니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물었다.

 

"선생님, 이 시험 성적에 들어가요?"

 

아이들은 사실 매달 성취도평가 형식의 필기 시험을 치른다. 학기별로 2번씩 치르는 성취도평가에 학기별로 있는 진급평가, 학기 초에 치르는 진단평가, 요즘 많이 하는 과목별 학력 인증제 등. 내가 봐도 지긋지긋할 그 시험들 말고도 내가 따로 하는 수행평가에 학원 시험까지 치면 그야말로 시험천국. 그래서 아이들은 항상 이 시험이 성적에 들어가느냐고 묻는다.

 

수업 잘 듣는 것, 과학 시간에 실험을 잘 해서 보고서를 잘 쓰는 것, 토론 수업에서 훌륭한 연설을 해서 박수받은 것. 그런 것은 아이들에게 공부 잘하는 게  아니다. 공부를 잘하려면 '성적'에 들어가는 시험을 잘 치기 위해 대비용 문제집을 열심히 풀어야 한다. 학교는 그저 공식적으로 인정되는 시험 결과를 인증해주는 기관일 뿐이라는 생각에 씁쓸하다.

 

[사례 3. 공문에 살고, 공문에 죽는다]

 

대구 지역 대부분의 초등학교는 지난해 12월 30일에 겨울방학을 시작했다. 그런데 국가수준 성취도 평가결과를 취합해서 보고하라는 공문이 12월 31일에 각 학교로 내려왔다. 실제적으로 교사들이 결과 보고 공문을 전달받은 것은 신정연휴가 끝난 1월 3일경이었고 보고는 1월 6일까지였다. 방학 중이라 교사들이 매일 출근하지 않는 상황이었고 연수 등의 이유로 지역에 또는 국내에 없는 교사도 있었다.

 

'공무원은 공문에 살고, 공문에 죽는다'라는 우스개 같은 진담이 교사들을 압박하곤 한다. 결국, 업무담당자와 교사들이 모두 모여 취합했어야 할 결과는 어설프게 봉합되어 기한 안에 보고되었다. 모르긴 몰라도 아마 모든 학교가 같은 상황이었을 것이다. 방학 때 평가 결과 취합과 같은 업무가 원활히 이루어지기 힘들 것이라는 것은 교육청 관계자라면 누구나 알 터인데 왜 이렇게 일을 진행하는지 모르겠다는 한탄은 2월 내내 이어졌다.

 

교사는 그래도 괜찮지만..

 

  
초ㆍ중ㆍ고생의 학력 수준을 평가하기 위한 국가 수준 학업성취도 평가가 치러진 지난해 10월 14일 오전 서울 종로구 서울시교육청 앞에서 시민단체 회원들이 무한경쟁교육 일제고사에 반대하며 등교와 시험을 거부하는 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일제고사

 

한국의 교육 시스템은 기본적으로 선발형 체제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하는 학생들은 중학교로 진학할 때 좀 걸러서 떨어져 나가고 고등학교 진학할 때 또 떨어져 나가고 대학교 진학할 때도 걸러지는, 마치 여러 개의 체를 통과해 콩을 골라내는 것 같은 시스템이 짜여 있다.

 

지금은 10학년(고1)까지 의무교육으로 묶이면서 진학하지 못하는 경우는 거의 없지만 그래도 시험을 치르고 선발되는 과정을 거쳐야 하는 것은 마찬가지다. 과학고나 외국어고 등의 특수목적형 학교에 대해서는 말할 것도 없다. 다시 말해 한국 교육체제는 기본적으로 순위를 매겨서 위부터 잘라 필요로 하는 대상(상급학교 또는 사회, 기업)에 공급할 수 있도록 짜여 있는 구조다.  

 

떨어져 나가는 학생들에게는 부진학생 재지도라든가 특별보충교육과정 등이 제공되지만 그 역시 다음 선발에서 좀 더 높은 순위를 차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지, 그 학생이 다른 능력을 계발하도록 돕거나 다른 진로를 탐색할 수 있는 기회를 주는 것은 아니다.

 

이런 시스템에서는 학년이 올라가면 갈수록, 여러 개의 체를 거치면 거칠수록 부진학생이 많아지는 게 정상이다. 평가 뿐만 아니라 교육과정이나 교과서 역시 그렇게 구성되어 있다. 매해 수능시험에서도 최대 화두는 '변별력'이 아닌가.

 

이렇게 변별력을 높이기 위해 부단히 노력하는 시스템과는 다른 지침이 학교로는 늘 내려온다. 떨어져 나가는 학생을 줄이라는(내지는 없애라는) 요구가 그것이다. 이건 마치 믹서에 오렌지를 넣고 갈아 주스를 만들면서 알갱이 모양은 다 살리자는 말처럼 비현실적으로 들린다.

 

알갱이가 살아있는 오렌지 주스를 만들고 싶다면 주스 따로, 알갱이 따로 만들어서 한 잔에 부어야 한다. 모든 아이를 우수하게 키우려면 모든 아이가 일렬종대로 서서 한길로만 달려가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개성과 적성에 따라 다양한 길로 커나갈 수 있게 해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그 다양한 아이들이 한 잔에 담긴 주스처럼 함께 조화를 이루며 살아갈 수 있도록 해야 하는 것 아닐까?

 

물론 전국적인 학력조사엔 특히 성취도가 낮은 과목, 영역에서는 교육과정을 수정할 수 있는 효과가 있을 수도 있다. 그래야 학생들에게 더 알기 쉽고 효과적인 교육을 할 수 있을 것이고, 특별히 성취가 낮은 지역에 교육적 투자를 집중하여 교육소외를 줄일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반드시 꼭, 전국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일제고사로, 그만큼의 시간과 그만큼의 비용으로 이 효과를 얻어야 하는 것인가는 따져 봐야 할 문제이다. 더 정확한 자료 수집을 위해 전국 모든 학생을 대상으로 실시한다는데, 사실 그렇게 한다고 해서 과연 전국 모든 학생에 대한 정확한 결과를 얻을 수 있는지 의문이다.

 

요즘은 각 학교에서 개별적으로 실시하는 평가도 학생의 사고력과 창의성을 가늠하기 위해 논술형으로 변화해가고 있는데, 단순 지식 위주의 객관식 문제들로 정확하게 학생을 평가한다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다. 더구나 지금처럼 성취도가 높은 학교에 예산을 더 집중 하겠다는 등의 정책 발표는 사실 학력이 낮은 학교는 그냥 포기하겠다는 이야기로 들린다.

 

그래도 교사인 나는 괜찮다. 일제고사로 전국에서 비교당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꽃피우는 교육보다는 문제에 잘 답하는 교육을 받아야 하는 아이들보다는. 아이들이 너무나 고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