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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노!노! 일제고사(2)

반짝이2 2009. 3. 30. 13:07
"대체 이걸 알아서 어디에 쓸 건데?"
[노! 노! 일제고사 ②] 10월 초등학교 6학년 일제고사 분석
신은희 (bada70) 기자

지난해 10월 14~15일 일제고사 때 학생들에게 시험선택권과 체험학습 안내를 했다는 이유로 초등 선생님들 6명이 아이들 곁을 떠나야 했습니다. 그 뒤로 많은 일들이 있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서 그 대단한 시험문제를 분석해 보고 싶다는 연락이 많이 왔습니다. 시험 정답 오류같은 흠을 찾는 것 같았습니다. 이런 문제를 분석할 전문가를 찾아봤지만 그럴 사람이 없다고도 했습니다.

 

당연한 결과일지 모릅니다. 그 동안 초등학교에서는 이런 식의 지필평가 위주 시험을 보지 말라고 7차 교육과정 총론에서 규정하고, 학교단위 시험도 못 보게 하였습니다. 수업시간에 공부한 내용은 학생들의 수준과 관심에 맞춰 주입하는 게 아니라 학생들의 다양한 반응을 이끌어내라고 요구하였습니다.

 

심지어 열린교육이 유행하던 초기에는 일제히 앞을 보고 앉아 있는 것조차 문제 삼으며 모두 모둠대형으로 앉히라고 하였습니다. 그래놓고 갑자기 한 가지 기준으로 시험을 보겠다니 많은 교사들이 당혹감에 빠졌습니다. 교육과정 재구성하라고 그렇게 난리더니 갑자기 바꿔?

 

이런 가운데 얼마 전 영어시험이 초등교육과정을 벗어난 문제가 많았다는 기사가 있었습니다.(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090883&PAGE_CD=17) 학교 밖에서나 배울 내용을 시험에 내는 것은 교육과정을 어긴 것이니 법을 어긴 것과 같습니다. 그렇다면 교과부가 먼저 사과하고 처벌을 받아야 할 것입니다.

 

그럼 다른 교과목은 어떨까요? 전교조 초등교과사업국에서는 시험 본 날부터 시험지에 대한 교사들의 반응을 모았고 교과분과 등을 통해 문항분석을 했습니다. 여러 과목을 다 다루려고 보니 내용이 매우 많았습니다. 기사로 정리하기에 양이 많고 지루합니다. 하지만 초등학생들이 이틀간 본 문제의 양에 비하면 별 거 아니라고 위로해야 할 것 같습니다.

 

수능형 시험? 초등학생에게 너무 가혹해

 

교과부는 이 시험을 보면서 수능형 시험이란 말을 했습니다. 교과서를 벗어나 학생들의 학업성취능력을 본다는 것이지요. 현장 교사나 학생들은 일단 문제지 수와 문항수가 많고 내용이 어렵다고 하였습니다. 초등학교에서 본 적이 없는 시험 유형입니다.  그래서 표로 정리해 보았습니다.

 

  
2008년 10월 14, 15일 이틀간 초등학생들에게 좀 버거운 시험이 치러줬습니다
ⓒ 신은희
초6시험 일정

 

내친 김에 2008학년도 수능시험도 비슷하게 표로 만들어보았습니다.

 

  
2008년 수능 시간표와 문항수
ⓒ 신은희
수능시간표

 

만들고 보니 몇 가지가 눈에 보입니다. 보통 1문제를 풀 시간이 1분 30초 내외인데 이는 정말 수능과 비슷합니다(전체 문항수는 6학년 시험이 오히려 조금 많습니다). 오지선다 문제라 아이들에게는 일일이 읽어야 할 가짓수가 더 늘어난 느낌이 들 수밖에 없습니다. 문항 수가 워낙 많다 보니 평소에 문제풀이 연습을 한 아이들이나 겨우 시간 안에 문제를 풀 수 있습니다. 마치 지능검사나 적성검사 문제를 푸는 느낌입니다.

 

놀이와 활동을 중시하는 7차 교육과정에서는 수학시간에도 문제풀이보다 놀이방식이나 체험활동을 중요하게 여겨왔습니다. 이렇게 수업한 아이들에게 쉴새없이 시험문제만 풀게 하는 것이 과연 교육적인지, 그렇게 강조한 사고력과 문제해결력, 자기주도적 학습능력을 평가할 수 있을지 다시 생각해보게 됩니다.

 

과학적 평가방식부터 고민해야

 

또한 초등학교 6학년에게 이런 시험시간과 방식이 적합한지 신체발달, 인지발달 여러 측면에서 고려해봐야 하지 않을까요? 영어시험의 경우 듣기문제이고 2번씩만 들려줍니다. 진단평가같은 경우는 1번씩만 들려줍니다. 초등학교에서 많이 보는 국어 받아쓰기만 해도 보통 3번씩 또박또박 읽어주는데, 외국말인 영어를 1-2번만 듣고 풀라는 것은 너무한다는 느낌도 듭니다.

 

초등학교 3학년 기초학력 평가 국어시험도 읽기 문제는 교사가 한 명씩 불러서 평가합니다. 영국의 경우도 영어(모국어이긴 하지만) 시험을 볼 때 평가담당관이 학교마다 파견되어 다른 날짜에 한 명씩 평가를 한다고 합니다. 국어도 이렇게 보는데 영어를 이런 방식으로 평가한다면 아이들이 자기 실력을 충분히 발휘할 수 있을까요? 다른 과목 평가 방식도 마찬가지입니다.

 

물론 일제고사가 학생의 성취도를 평가하는 하나의 방식일 수는 있지만, 지금처럼 오직 그 하나로 학생들을 우수, 보통학력, 기초학력, 기초학력미달로 가르는 것은 설정근거부터 잘못되었다고 봅니다.

 

이거 알아서 어디에 쓸 건데?

 

교과별로 들어가면 문제의 특성이 조금씩 다릅니다. 여러 선생님들이 분석한 내용들을 보면 비슷한 고민이 많습니다.

 

국어는 교육과정에 많이 나오는 문학영역보다 다른 부분 문제가 많이 출제됐습니다. 학생들의 다양한 반응을 요구하는 수업내용을 담기가 어렵게 생겼습니다. 단순 지식이나 읽기 문제가 많은 편이기 때문입니다. 앞으로 수업시간에도 이렇게 문제풀이식 수업을 해야 점수가 좋아질까요? 그 동안 해오던 수업방식을 바꿔야 하는지 고민이 된다고 하는 선생님이 많았습니다.

 

수학은 대체로 문제 수준은 평이하나 수학교과에서 강조한 창의성이나 문제해결력과는 거리가 먼 계산문제와 수학 개념을 묻는 문제가 많았습니다. 물론 연산영역문제가 대부분이 아니라 다른 영역(도형, 문자와 식, 측정 등)의 문제도 있었지만, 결국 요구하는 건 이걸 계산으로 치환시켜서 복합적인 능력을 아예 측정할 수 없다는 점입니다. 그래서 수학을 분석한 선생님은 이렇게 말합니다. 

 

"대체 이걸 알아서 어디에 쓸 건데?"

 

사회나 과학도 단편지식을 묻는 문제가 많습니다. 시험문제를 만들려고 보니 수업이나 수행평가 과정에서 평가해야 할 내용은 아예 담을 수가 없었을 것입니다. 문제 수준을 보더라도 사회는 시대에 뒤떨어진 핵가족/대가족 형태를 묻는 것도 나옵니다. 다문화사회로 변해가는 데다 대안가족 형태도 모색되는 시대인데 말입니다. 과학을 분석한 선생님들도 과학적 개념과 동떨어진 변두리 지식을 묻는 것이 많아 당혹스러웠다고 합니다. 너무 뻔한 것을 물어봐서 결국 얼마나 많이 알고 있는지 지식의 양을 측정하는 수준이라는 겁니다.

 

수행평가야? 단답형이야?

 

이 외에도 시험지를 분석한 모임에서 공통으로 나온 의견은 수행평가문항이 평소 수업시간에 하는 것과 달라 서답형 평가나 주관식이라고 부르는 게 나을 정도의 문제가 많았다는 점입니다. 단답형문제라고 하는 편이 낫겠습니다.

 

  
수행평가라고 하기엔 좀 무리가 있어보입니다
ⓒ 신은희
수행평가

➜ 6학년 겉넓이와 부피를 구하는 복잡한 계산문제 풀이과정이다. 계산과정을 쓰는 서술평가로 볼 수 있을까?

 

이런 문제를 수행평가라고 한다면 현재 초등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수행평가문제를 다 바꿔야 할 것입니다.

 

특히, 초등학교에서는 '학생 스스로가 자신의 지식이나 기능을 나타낼 수 있도록 산출물을 만들거나, 행동으로 나타내거나, 답안을 작성․구성하도록 요구하는 평가 방식', 즉 수행 평가를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것이다. 이러한 방식으로 서술형 또는 주관식 검사, 논술형 검사, 구술 시험, 찬․반 토론법, 실기 시험, 실험․ 실습법, 면접법, 관찰법, 자기 평가 보고서, 연구 보고서, 포트폴리오(portfolio) 등 다양한 기법들을 활용하여 창의성이나 문제 해결력 등을 파악하여 할 것이다.<7차 교육과정 해설서>

 

물론 수행평가제도에 대한 불만도 많습니다. 도입 당시에 교육부는 수행평가가 좋다고 무조건 하라고만 했지 교과내용은 그대로 많고 학급 아이들도 많아 흉내만 낸 것도 많습니다. 절대기준평가라고 제공한 내용은 교과서 학습목표만 모아놓고 너무 많아 뭐 하나 제대로 평가하기 어렵습니다. 이 기회에 교육당국은 이런 일제고사문제보다 오히려 교과별로 제대로 된 수행평가문항이나 기준부터 제대로 만들어주는 게 수업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봅니다.

 

두 번째로 국가수준 문제라고 보기에는 지문이 억지스럽거나 그림이 조잡하다는 평가도 많았습니다.

 

  
메뚜기 암수 구분 문제
ⓒ 신은희
일제고사

➜ 교육과정상에는 메뚜기의 '크기'를 비교해 암수를 구별하게 되어 있다. 그런데 이 그림으로 보면 '다리와 더듬이'도 다르다는 오해가 생길 수 있다. 문제에 가장 옳은 것을 찾으라고 하면 좀 나을 것 같다. 또 다양한 동물들의 여러 가지 암수 구별법을 제시한 후 나머지 구별법을 찾도록 하는 문제가 더 좋지 않았을까?(서울 과학교육과정모임)

 

국어 문제도 삽화가 엉성하기는 마찬가지입니다.

 

  
삽화가 어설퍼서 정확한 내용을 알기 어렵습니다
ⓒ 신은희
일제고사

 

일제고사 정책 재검토해야

 

시험 문제들을 다 보니 과연 국가가 이 많은 돈을 들이고 무리수를 써서 이런 단순 암기문제나 보게 한 이유가 궁금해집니다. 학생들에게 다양한 체험과 경험을 제공할 초등교육목표에도 맞지 않거니와 교과목표에서 원하는 탐구능력이나 사고력, 창의성은 눈을 씻고 봐도 찾기 어렵습니다. 수업시간에 주로 이루어지는 내용과 관계가 별로 없거나 활동적인 수업을 받을 필요가 없는 내용들입니다.

 

그런데도 이런 시험이 계속되면 현장에서는 시험에 나올 단편 지식 문제 위주로 수업을 해야 할지 모릅니다. 학자들이 그렇게 저주하던 암죽식교육이 초등학교에서도 부활할지 모르겠습니다. 미래를 살아나갈 우리 아이들이 이런 구시대 교육을 받아야 할까요? 얼마나 많은 학생들이 시험 압박 때문에 놀지도 못하고 고통스러워해야 할까요?

 

정부와 교과부는 지금이라도 말도 많고 탈도 많은 일제고사 정책을 원점에서 재검토해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