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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노!노! 일제고사(4)

반짝이2 2009. 3. 30. 13:10
시험 거부를 놓고 아내와 벌인 '불꽃 논쟁'
[노!노! 일제고사④] 31일 학교 탈출 계획, 성공할까
장승현 (startjsm) 기자

얼마 전부터 3월 31일 일제고사 때 초등학교 3학년과 6학년 아들을 데리고 학교를 떠날 탈출 계획을 세웠다. 물론 아이들과 함께 시험 거부할 생각을 하고 있었지만 학교와 합의하에 정상적인 현장학습이 되지 않을 바에야 그냥 결석 처리하고 떠나자고 생각했다.

며칠 전 학교에 갔을 때 교감 선생님이 이렇게 말씀하셨다.

 

"저기 부위원장님(학교에서 학운위 부위원장을 맡고 있다), 이번에는 학교에서 학력신장을 위해 방과 후 학교도 하고 이러저러한 계획을 세웠습니다."


그 말을 듣고 있다가 한마디 툭 던지고 말았다.


"이명박 대통령이 하는 말하고 똑같네요. 교과부에서 그런 지침이 내려왔죠?"

 

아빠의 학교 탈출 계획... 아들은 탐색에 들어가고

 

  
전국학업성취도 평가의 '성적 조작 의혹' 파문이 전국으로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2월 23일 오전 서울시 교육청 앞에서 무한경쟁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청소년, 청소년단체 활동가들이 농성돌입 기자회견 열고 일제고사 폐지와 일제고사로 인한 해직교사들의 복직을 요구하며 손피켓을 들어보이고 있다.
ⓒ 유성호
일제고사반대

물론 일제고사 때 학교 탈출 계획은 아빠인 나 혼자만의 생각이라, 그냥 주변에 이런 계획이 있다고 흘리는 정도였다. 이 사실을 눈치 챘는지 6학년짜리 아들이 인터넷 검색을 해보았단다. 일제고사가 뭔지 알아보았다는 것.

 

아내는 물론 일제고사 자체를 반대하고 있다. 그렇지만 그걸 거부할 수 있는 방법이 없고, 그걸 거부하는 것이 아이에게 얼마나 부담이 되는지 알기 때문에 고민하는 것 같았다. 아내는 한 달 전 시사주간지 <한겨레 21>(750호)에 나온 '학원탈출'이라는 기사를 보고 많이 공감한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내가 사는 곳은 충남 조치원 읍내에서 8킬로미터나 떨어진 시골이지만 아내는 조치원읍에서 피아노 학원을 하고 있다. 아이들은 학교를 마치면 엄마 학원이 있는 조치원읍으로 가기 때문에 엄마가 학원을 마칠 때까지 시간이 애매하다.

그래서 아이들을 그동안 태권도장, 바둑학원, 미술학원, 명상학원 등에 다양하게 보냈지만 어디 한 군데 정착하고 다니지를 못했다. 그렇다고 엄마가 하는 학원에서 꾸준히 피아노를 배울 형편도 못 된다. 자기 자식 가르치는 게 말처럼 쉽지가 않단다.


아이들이 이상하게 학원에 적응하지 못해 학원을 다니지 않자 주변에서 '사교육을 해 먹고 사는 사람들이 자기 자식들은 사교육을 하나도 안 시킨다'고 수군거리기도 했다.  

어쨌든 일제고사를 보지 않을 심사로 아내와 아이들에게 빨리 가족회의를 하자고 이야기를 했다. 시간이 없기도 했지만, 아내와 아이들이 은근히 가족회의를 피하는 눈치였다.

사실 나도 고민을 많이 했다. 그러나 일제고사는 용납할 수 없는 문제다. 이명박 정권 들어서 특히 교육을 일방통행식으로 처리하려는 모습이 너무 답답했다. 그런 정책은 따르고 싶지 않았다.

 

그러나 아이가 제일 걸렸다. 아이가 과연 일제고사의 문제점을 얼마나 이해할 수 있을까?  아이가 시험을 거부했을 때 생길 부담을 감수할 수 있을지도 걱정이었다.

 

아내와 불꽃 튀는 논쟁을 벌이다

 

  
전국 중학교 1,2학년 대상으로 일제고사가 실시되고 있는 가운데 12월 23일 오후 서울 덕수궁에서 일제고사에 반대하는 학생, 학부모, 시민단체 회원들이 시험을 거부하고 덕수궁을 둘러보며 체험학습을 하고 있다.
ⓒ 유성호
일제고사

 

어쨌든 어렵게 회의를 시작했다. 회의 시작부터 난 아내와 불꽃 튀는 논쟁을 벌여야 했다.

"당신, 너무 강요하지 말아요. 아이 생각도 있으니까 아이한테 먼저 의견을 듣고 아이 의견을 존중해주자고요."

이 얘기는 아이한테 너무 부담을 주지 말자는 뜻이었다. 그 말은 아이가 너무 부담되니까 그냥 시험을 보게 하자는 말이기도 했다. 아내도 내 교육관에 대해 약간은 의구심을 품고 있다.


대안학교에 대한 생각 등에 관해 아내는 나와 의견이 다르다. 아내는 이번에도 아빠인 내 의도대로 일을 끌고 갈까봐 걱정하는 눈치였다.

"그럼 당신이 먼저 일제고사에 대해 아이한테 설명을 해주세요. 왜 시험이 나쁜 것인지 아이가 알고 판단할 수 있게. 단 아이가 마지막으로 판단하는 대로 당신과 내가 따라야 한다는 전제를 둬야 해요."

6학년인 아들은 엄마 아빠가 흥분해서 논쟁을 하고 있자 아무 말도 안 한 채 둘을 지켜 보고만 있었다.

"그럼 당신은 그날 시험을 안 보면 어떻게 할 생각인데요?"

아내가 공격적으로 나왔다. 아내가 회의를 주도해 나가고 있었다. 갑자기 내가 무슨 죄인처럼 몰리고 있었다.

"저기, 저... 진안에 가려고. 저기 후배네와 친구 아이들이 있잖아. 거기로 모아 보려고."
"거긴 안 돼요. 거길 가면 당신 뻔해요. 친구들이랑 술 마시고 어울릴 거죠. 아이들은 아이들대로 내팽개치고…."

진안은 아이들한테 해방구 같은 곳이다. 친구네 애들이 아들 또래들인데 그 집 아이들은 집에서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후배네 집 아이들도 마찬가지로 홈스쿨링을 하고 있다. 가끔 놀러가면 그 집 아이들이 산 속에서 하얀 산양을 데리고 놀고 산 속 들판을 뛰어다니는 걸 볼 수 있다. 그 모습이 그렇게 보기 좋을 수가 없었다. 우리 아이들도 자연 속에서 살지만 그곳은 또 달라 보였다. 
 
사실 내가 그동안 고민하다 내린 결론은 아이나 아내한테 무리하게 강요하기보다는 토론을 통해 합의를 만들어 가는 것이다. 그래서 일제고사 응시 여부도 함께 이야기를 해서 아이가 최종적으로 판단하게 할 생각이었다. 만약 시험을 보게 된다 하더라도 말이다.

 

아내의 결단... "기차여행 가는 걸로 하죠"

 

"그럼 아이들이랑 기차여행을 가세요. 그거라면 허락할게요. 차비도 제가 준비할게요. 아빠랑 아이들이랑 기차여행 가는 거예요."

아내가 갑자기 결론을 내렸다. 일제고사를 안 봐도 된다는 거였다. 뜻밖에도 쉽게 결론이 났다.

"단 아들이 일제고사를 안 본다는 결정을 하면 그렇게 하는 걸로요. 일제고사 대신 경주에 가서 신라에 대해서 학습하는 걸로 결정해요."

"성은이 망극하옵니다."

 

아내를 설득했으니 이제는 두 아들의 결정이 남았다. 31일 어떻게 할지 난 작전짜기에 돌입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