혼자 먹는 밥 혼자 먹는 밥 오인태 찬밥 한 덩어리도 뻘건 희망 한 조각씩 척척 걸쳐 뜨겁게 나눠먹던 때가 있었다 채 채워지기도 전에 짐짓 부른 체 서로 먼저 숟가락을 양보하며 남의 입에 들어가는 밥에 내 배가 불러지며 힘이 솟던 때가 있었다 밥을 같이 먹는다는 건 삶을 같이 한다는 것 이제 뿔뿔이 흩어진 사.. 산책길/시인의 숲 2009.08.29
'쉽게 자기를 흔들어 울지 말라, 그러나' '쉽게 자기를 흔들어 울지 말라, 그러나' 공광규 막무가내인 바람과 약한 나무가 많아 세상이 슬픔덩어리인 양 보이지만 헐벗은 겨울나무는 미풍에 울지 않는다 작은 바람 앞에서 쓸데없이 자주 울어버리는 나무들 사이에서 쉽게 자기를 흔들어 울지 말라 바람은 우리를 거친 들판에 몰고 다니며 구기.. 산책길/시인의 숲 2009.08.29
사랑 사랑 / 박해석 속잎 돋는 봄이면 속잎 속에서 울고 천둥치는 여름밤이면 천둥속에서 울고 비오면 빗속에 숨어 비 맞은 꽃으로 노래하고 눈 맞으면 눈길 걸어가며 젖은 몸으로 노래하고 꿈에 님보면 이게 생시였으면 하고 생시 님보면 이게 꿈이 아닐까 하고 너 만나면 나 먼저 엎드려 울고 너 죽으면 나.. 산책길/시인의 숲 2009.07.20
아직과 이미 사이 아직과 이미 사이 / 박노해 '아직'에 절망할 때 '이미'를 보아 문제 속에 들어 있는 답안처럼 겨울 속에 들어찬 햇봄처럼 현실 속에 이미 와 있는 미래를 아직 오지 않은 좋은 세상에 절망할때 우리 속에 이미 와 있는 좋은 삶들을 보아 아직 피지 않은 꽃을 보기 위해선 먼저 허리 굽혀 흙과 뿌리를 보살.. 산책길/시인의 숲 2009.06.04
사랑은 끝이 없다네 - 박노해 사랑은 끝이 없다네 / 박노해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시간이 흘러서도 그대가 내 마음속을 걸어다니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 많은 강을 건너서도 그대가 내 가슴에 등불로 환하겠는가 사랑에 끝이 있다면 어떻게 그대 이름만 떠올라도 푸드득, 한 순간에 날아오르겠는가 그 .. 산책길/시인의 숲 2009.05.12
촛불시위 -백무산 촛불 시위 하나의 불꽃에서 수많은 불꽃이 옮겨붙는다 그리고는 누가 최초의 불꽃인지 누가 중심인지 알 수가 없다 알 필요도 없어졌다 중심은 처음부터 무수하다 그렇게 내 사랑도 옮겨붙고 산에 산에 꽃이 피네 백무산, 창비, 1999, 「길은 광야의 것이다」중에서 십년전에 씌여진 시라는데 마치 십년.. 산책길/시인의 숲 2009.05.08
꽃다지 꽃다지 도종환 바람 한 줄기에도 살이 떨리는 이 하늘 아래 오직 나 혼자뿐이라고 내가 이 세상에 나왔을 때 나는 생각했습니다 처음 돋는 풀 한 포기보다 소중히 여겨지지 않고 민들레만큼도 화려하지 못하여 나는 흙바람 속에 조용히 내 몸을 접어두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내가 당신을 안 뒤부터는 .. 산책길/시인의 숲 2009.04.22
멀리가는 물 멀리가는 물 - 도종환 어떤 강물이든 처음엔 맑은마음 가벼운 걸음으로 산골짝을 나선다 사람사는 세상을 향해 가는 물줄기는 그러나 세상속을 지나면서 흐린 손으로 옆에 서는 물과도 만나야한다 이미 더렵혀진 물이나 썩을데로 썩은 물과도 만나야 한다 이 세상 그런 여러 물과 만나며 그만 거기 멈.. 산책길/시인의 숲 2009.04.08
빙산처럼 빙산처럼 /박노해 <사람만이 희망이다> 中에서 빙산은 거친 바람의 방향과는 상관없이 일정한 곳을 향하여 묵묵히 진행한다. 바다 위에 떠 있는 모든 것들은 바람의 방향을 따르지만, 빙산만은 엄청난 힘을 가진 태풍의 진로마저 거스르며 제 갈 길을 꿋꿋이 간다. 빙산은 자기 몸체의 대부분을 바.. 산책길/시인의 숲 2009.04.08
사랑을 시작하는 동생에게 사랑을 시작하는 동생에게 나해철 사랑이 깊으면 결코 보이지 않던 풀잎 끝의 이슬이 보이고 이슬 속으로 너는 걸어들어갈 수 있다. 여린 어깨로 돌짐을 지고 돌십자가를 지고 십리 외길을 갈 수 있다. 깊어지면 깊어질수록 너는 이 세상이 네 사랑만을 위하여 있다는 진실을 알게 된다. 네가 태어난 .. 산책길/시인의 숲 2009.04.03